연중 제 16주간 목요일(가해)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런 질문에 대한 대답이 될 것입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는데 어떤 것은 길에, 어떤 것은 돌밭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고, 어떤 씨는 좋은 땅에 뿌려졌습니다. 그런데 길, 돌밭,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좋은 땅에 뿌려진 씨만 열매를 맺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씨와 열매를 맺는 씨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씨는 같은 씨입니다. 즉 길, 돌밭, 가시덤불 속에 뿌려진 씨나,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다 같은 씨입니다. 그러니까 열매를 맺고 못 맺고 하는 것은 씨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씨가 떨어진 장소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요. 아무리 좋은 씨라도 즉 열매를 낼 수 있는 씨라도 그 씨가 뿌려진 장소가 길, 돌밭, 가시덤불 속이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 그 씨란 무엇일까요? 그 씨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이요 길, 돌밭, 가시덤불 속, 좋은 땅이라고 표현된 장소는 바로 우리 마음 즉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는 이의 자세를 말합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으면서도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하고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이유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자세가 길, 돌밭, 가시덤불 속과 같은 자세로 들었기 때문이고 영적으로 성숙할 수 있었던 사람은 좋은 땅처럼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오랜 신앙생활을 했다고 하더라도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 자세가 길, 돌밭, 가시덤불 속과 같을 때에는 영적으로 성숙할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성숙시켜 주는 것은 우리의 능력이나 지성, 활동이나 시간이 아니라 우리 안에 뿌려진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우리가 오랜 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하면, 뿌리가 없으면,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그 말씀의 숨을 막아버리면 결코 아무런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오직 좋은 땅 즉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읽고 묵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이 바로 우리가 영적으로 성숙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며 지름길입니다. 우리의 영적 성숙은 결코 활동에, 아니면 막연한 신심에. 미사 참례나 겨우 왔다 갔다는 하는 신앙생활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도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 깨닫는 것입니다. 깨달아야 하늘 나라에 대해 눈이 뜨입니다. 깨달아야 하늘 나라의 소리가 들립니다. 깨달아야 죽었던 내 영혼이 다시 부활합니다. 깨달아야 병들었던 내 영혼이 치유됩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우리가 매일 지고 가야 할 십자가를 기쁘게 지고 갈 수 있고 웃으면서 봉사할 수 있습니다.
깨달아야 이 세상의 것에 얽매이지 않고 어떤 사건이나 문제 앞에서 초조하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생기고 초연할 수 있습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신앙생활의 기쁨이 있고 가슴 벅찬 충만함이 밖으로 베어 나옵니다. 깨달음이 있어야 옳고 그름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고 올바르게 도와 줄 수 있다.
우리의 가장 취약점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기는 듣지만 깨달음이 없이 듣는다는 것입니다. 듣기는 듣지만 그 말씀을 깨달아야 한다는 의식 없이 듣습니다. 아니 깨달으려고 노력하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봉사한다고 나서고, 기도한다고 앉아있고, 바쁘다고 여기 저기 다닙니다.
정작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는 일입니다. 이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분주했던 하루를 잠시 돌아보고 고요한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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