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 제 2주간 금요일(나해)
같은 일, 같은 상황에서도 참 다른 표현이 나옵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들도 우리 주변에 참 많습니다. 내가 천천히 몰면 안전운전, 남이 천천히 몰면 소심운전. 내가 하는 욕은 유머와 패러디, 남이 하는 욕은 인격모독.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내가 출세하면 능력이 탁월해서이고, 남이 출세하면 아부를 잘해서라고 합니다.
사람은 자신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말들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잘못이 아니라 최대한 남을 배려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참 좋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부정적으로만 보게 된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나는 항상 옳고 너는 항상 그르다라는 것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들은 언제나 옳으며 자신들을 반대하는, 자신들과 다른 노선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며 잘못된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종교 지도자들을 지적하십니다.
어제부터 이어지는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세레자 요한을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이고 하십니다. 요한은 하느님으로부터 구세주께서 오실 것을 믿고 그 분이 걸으실 길을 미리 준비하기 위해 메뚜기와 들꿀을 먹으며 가죽 옷을 입고 광야에서 살면서 금식과 고행을 했습니다.
이러한 삶에 대해 백성들의 스승이자 지도자들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처럼 먹고 마시는 인간의 즐거움도 즐길 줄 모른다며 요한을 가리켜 마귀들린 사람이라고 손가락질 합니다. 그렇다고 모든 이와 함께 먹고 마시며 기뻐하고 즐거워하시며 때로는 함께 슬퍼해 주시는 예수님을 보고는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먹보요 술꾼이며 저질스런 사람들과 함께 다니는 똑같은 부류의 인간이라고 손가락질을 해댑니다.
자기 고집에 집착함으로써 진실을 외면하는 삐뚤어진 마음을 가진 지도자들에게 비난받지 않는 대상은 없습니다. 그들이 부르는 피리에 내가 어떻든 상관없이 춤을 춰야만 하고 그들이 부르는 곡에 내가 슬프지도 않는데 가슴을 쳐야만 정상이라고 합니다.
결국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이 부르는 피리에 춤추는 하느님을, 자신들이 부르는 곡에 슬퍼하는 하느님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며 백성들에게 똑같이 따라 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그런 꼭두각시 같은 분이 아니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은 우리와 함께 살아계시며 함께 웃어주고 함께 슬퍼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마지막에 드러나는 것은, 굳어버리고 뒤틀린 마음이 이끄는 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들어난다는”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이끄시는 계획을 통해서 그분의 현존을,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대림시기가 중반을 향하고 있습니다. 처음 대림을 맞이하면서 세웠던 계획과 다짐을 다시금 되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그 다짐이, 그 계획이 나만을 위한 것은 아닌지, 내 맘에 드는 하느님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는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우리 모두가 고대하는 예수님을 기다릴 수 있도록 함께 준비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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