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팔일 축제 내 제 6일(나해)
2015년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수저계급론이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직업, 경제력 등으로 자녀의 삶이 결정된다는 이론입니다. 특히 청년실업이 심각한 현재의 상황에서 더욱 더 심하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하긴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잘사는 집은 유학도 보내주고, 결혼할 때 집도 사주지만 저는 그렇지 못해요. 흙수저거든요.”
그리고 어떤 부모로부터는 “내 자녀에게 많은 것을 물려줄 수 없어서 늘 미안한 마음이에요.”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도 있습니다. 무조건 부모 탓일까요? 많은 것을 물려주지 못하면 부모는 죄인의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 것일까요?
사실 대부분이 부모로부터 많은 것을 받지 못합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상대적 박탈감은 전체와의 비교가 아니라 아주 적은 부분과의 비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영화배우 오드리 헵번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보다 못한 다수보다 처지가 나은 소수하고만 스스로를 비교하며 불행해한다.”
부잣집 친구들과 비교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또래 대부분의 친구들과 비교한다면 어떻습니까? 생각보다 그리 나쁜 상황이 아님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소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운명을 개척하는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존경심을 갖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좀 더 쉬운 길’을 찾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쉽고 빠른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향해 자신을 던집니다.
그렇다면 ‘좀 더 쉬운 길’만을 찾으면서 이 사회에 대해서, 특히 자신을 낳아주신 부모님께 대해 불평불만을 가져야 할까요? 아닙니다. 그보다는 힘든 길이지만 ‘옳은 길’을 가는 것에 대한 굳은 신념으로 자신감을 갖고 힘차게 나아가는 모습이 존경과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한나라는 예언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여든네 살의 나이, 혼인하고 남편과 일곱 해를 살고는 쭉 과부로 지냈다고 합니다. 당시는 남성중심의 사회로 여자 혼자서 살기란 정말로 힘들었을 것입니다. 보통 15~16세에 혼인을 하던 당시를 떠올려본다면 거의 60년을 과부로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나 예언자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삶을 살았을까요? 그런데도 그녀는 좀 더 쉬운 길을 찾으면서 불평불만을 갖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어렵고 힘들지만 ‘옳은 길’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이 ‘옳은 길’에 대한 선택이 결국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를 직접 보게 되는 영광을 가져왔습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기쁨과 행복을 얻게 되었습니다.
쉽고 편한 길만을 선택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보다는 ‘옳은 길’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이를 따르는데 주저하지 않을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직접 주시는 큰 행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