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제 3주간 토요일(나해)
오늘 복음은 스스로 죄인임을 자처하는 세리의 기도하는 태도와 스스로 옳다고 믿고 남을 업신여기는 바리사이파 사람의 기도하는 태도를 비교함으로써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위선을 노골적으로 질책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 중에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은 정해진 시간인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에 매일 세 번씩 기도를 드렸습니다. 또한 기도는 특별히 성전에서 드릴 때 효과가 크다고 생각하여 시간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 뜰로 올라갔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면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기 위하여 올라간 두 사람에 관하여 이야기 합니다.
먼저 바리사이파 사람이 있습니다. “바리사이는 꼿꼿이 서서 혼잣말로 이렇게 기도하였다. ‘오, 하느님! 제가 다른 사람들, 강도짓을 하는 자나 불의를 저지르는 자나 간음을 하는 자와 같지 않고 저 세리와도 같지 않으니,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는 일주일에 두 번 단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바칩니다.’” 또 다른 이는 세리였습니다. 세리는 멀찍이 서서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가슴을 치며 말하였습니다.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축복은 이 세리에게 내려 졌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왜냐하면 바리사이는 실제로 하느님께 기도하러 간 자의 모습이었다기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찬사를 하느님 앞에 올리러 간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을 경건한 자로 남 앞에 드러내기를 좋아하는 그들은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장날에 얼굴을 희게 칠하고 어수선한 옷차림으로 사람들 앞에 나다니며 자기 자신의 경건함을 드러내기를 좋아했던 것입니다. 또한 십일조의 경우에도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든 것의 십일조를 바쳤다는 것을 드러냄으로써, 자신이 하느님 앞에 얼마나 선행을 많이 하는 사람인가를 자랑하러 간 것입니다. 그러나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라고 기도하고 있는 세리는 죄인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자세였고, 또 그런 마음으로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세리의 겸손한 기도가 하느님 앞에 받아들여져 은혜를 받게 되며 우리가 하느님 앞에 가져야 할 자세는 바로 이런 것이라고 일러주시는 것입니다.
이 복음 말씀을 다시 정리해 보면 교만한 사람이 하는 교만한 기도는 하느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일러줍니다.
하늘나라의 문은 지극히 낮아져 무릎을 꿇지 않고서는 그 어느 누구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남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기도할 수 없음을 일러 줍니다. 기도는 오늘 비유 속의 바리사이파 사람이 했던 것처럼 머리를 빳빳이 들고 장황하게 늘어놓는 자기소개나 자기과시도 아니며, 자랑도 아닌 것입니다.
기도는 비유 속의 세리처럼 스스로 죄인임을 깨닫는 자기인식(自己認識)이며, 그래서 처절한 통한(痛恨)이며, 그래서 자비를 구함이다. 기도를 들어주시고 자비를 베풀어주시는 하느님께서는 인간 삶의 결과만을 보시지 않으신다.
여러분, 오늘 어떤 기도를 바쳐야 할지,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가 하루에 50번씩이나 바쳤던 기도를 함께 바쳐봅시다.
“하느님, 저는 당신을 만유 위에 흠숭합니다. 제 마음 다하여 당신을 사랑합니다. 당신의 지복(至福)안에서 저는 기뻐합니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으시는 당신을 뵙고 십습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것만을 저는 원합니다.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알려주소서. 그대로 하리이다. 저와 제가 가진 모든 것은 당신 것이오니 당신 뜻대로 처리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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