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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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7월 2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7-21
조회수 : 262
종종 신부님의 강론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계신 분들을 만납니다. 강론 시간이 너무 짧거나 길다는 불만, 강론 내용에 대한 불만, 강론 할 때의 신부님 자세에 대한 불만도 듣게 됩니다. 하지만 저는 신부님의 강론에 대해 좋다 나쁘다 등의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 역시 강론을 하는 사제이다 보니, 강론을 준비하고 또 신자들 앞에서 강론하는 것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아무런 경험도 해보지 않은 사람일수록 그 일에 대해 남에 대한 판단을 많이 하게 됩니다. 권투 경기를 보면서 한 번도 링 위에 서 본 적이 없는 사람이 누구보다 흥분해서 그 선수에 대한 욕을 많이 한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권투를 해 본 사람은 경험을 가지고 있기에 선수를 향한 판단을 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지요. 잘 모르기 때문에 남에 대한 판단을 함부로 하는 것입니다. 알려고 하는 노력도 하지 않기 때문에 지혜로운 사람이 아닌 어리석은 사람의 길을 쫓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께 대해서도 역시 마찬가지지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더 함부로 주님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합니다. 하느님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성경을 읽어보았을까요? 또한 가톨릭 교리와 교회법에 대해 알고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이 또 알려고 하지 않는 사람이 자신의 작은 판단을 내세워서 하느님이 없다고 쉽게 말할 뿐입니다.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없앨까를 모의합니다. 주님께서는 나쁜 행동을 하신 적도 없었고, 하느님을 모욕하는 잘못된 말을 하신 것도 아닙니다. 어렵고 힘든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는 말씀이었고, 기쁨 안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행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예수님을 없애는데 모의를 하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예수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간적인 판단만을 내세우면서 감히 하느님이신 예수님을 판단하고 단죄하려는 것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 역시 주님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노력하기보다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불평불만을 가지면서 원망을 자주하고 있다면 분명 또 다른 모습으로 주님을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은 바로 주님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 성경이나 영적독서 읽기, 주님께서 강조하셨던 사랑을 실천하는 것 등 우리의 노력들이 주님을 환하게 알 수 있게 하며 진정으로 주님의 이름에 희망을 거는 삶을 살 수 있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