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과연 지금의 내 모습이 미래에 어떤 모습으로 변화될까? 미래에는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을까? 등의 걱정 속에서 불안해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걱정과 불안감을 가지고 있어도 미래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문득 군대를 제대하고 신학교 3학년으로 복학했을 때가 생각납니다. 그때의 제가 지금의 저를 본다면 어떻게 말할까요? 아마 이렇게 말하면서 깜짝 놀랐을 것입니다.
“와~~ 내가 정말로 신부가 되었어? 더군다나 그냥 평범한 신부가 아니라, 꽤 알려진 신부가 되었네?”
솔직히 당시 제 자신은 진로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가득했을 때였습니다. 훌륭한 신부님이 되고자 하는 마음은 아예 없었습니다. 그보다는 ‘과연 신부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더 컸었고, ‘혹시 교회에 커다란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신부님들처럼 어떤 특별한 재능이나 재주도 보이지 않았고, 늘 부족한 저의 모습만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현재는 ‘왜 그런 걱정을 하면서 불안해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미소를 짓게 됩니다.
미래는 내 생각과 다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음을 깨닫습니다. 현재를 바라보는 눈은 ‘지금’이라는 시간에 늘 제한적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굳이 미래를 걱정과 불안으로 상상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희망과 기쁨을 상상하면서 지금이라는 시간에 충실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인 오늘 복음에서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주님의 거룩한 변모 장면을 보게 됩니다. 더군다나 이 자리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는 모세와 엘리야도 있었지요. 이 모습에 그들은 ‘여기가 하늘 나라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더군다나 제자들의 꿈꾸는 미래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하늘 나라에 오르셨을 때 그 양옆에 앉는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여기서 쭉 지내자고 베드로가 대표해서 말했던 것이겠지요.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으로 힘들게 사는 것보다 지금의 이 현실이 쭉 계속되기를 바라는 마음인 것입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는 이런 소리가 들립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편하고 쉬운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주님의 말과 뜻에 맞게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걱정과 불안으로 미래를 바라봐서는 안 됩니다. 지금 주님의 뜻에 충실할수록 희망과 기쁨의 미래가 펼쳐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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