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 19, 13-15(연중 19주 토)
오늘 <복음>은 어린이를 데리고 와서 축복해주기를 청하는 사람들을 제자들이 꾸짖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전해줍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작심하시고 하신 말씀이 아니라, 벌어진 상황에 따라 하신 말씀입니다.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부자청년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두 이야기를 다 같이 ‘하느님 나라’에 관련하여 이끌어갑니다.
“어린이들을 그냥 놓아두어라.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마라.
사실 하늘나라는 이 어린이와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마태 19, 14)
사실, 예수님께서는 바로 앞장(18장)에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 3)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마태 18, 3)
“너희는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하나라도 업신여기지 않도록 주의하여라.”(마태 18, 10)
그런데도 불구하고, 제자들은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려오는 것을 가로막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친구로 여기건만 제자들은 그들을 업신여기며, 그들이 예수님께 가는 길을 가로막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가 ‘어린이 같은 사람들의 것’이며, ‘어린이와 같이 들어가지 않으면 들어갈 수 없는 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린이’는 성경에서 무력하고 힘없는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는 살 수 없어 돌보아주지 않으면 곧 죽게 되는 무능하고 약한 이를 표상합니다. 따라서 ‘어린이’는 사회에서 스스로 살 수 있는 힘이 없는 무력하고 무능한 이, 미천하고 버려진 이, 천대받고 소외된 이를 대변합니다. 또한 율법을 모르는 이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 나라’가 ‘어린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이들이 들어가는 곳’이라 함은 ‘하느님 나라’가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들어가는 이에게 열려있는 것이 아니라, 어린이와 같이 받아들이는 이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은총으로 말미암아 선물로 주어지는 나라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의 처신들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도 제자들처럼, 약하고 무력하고 가난한 이들, 사회적 약자들을 업신여기고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다가가고 축복받는 것을 가로막고 있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그들이 성당에 오는 것을 반겨 맞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꺼리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사실, 그들에게 우리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오히려 우리에게도 그들이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다가가면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복음화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어린이에게 다가가면, 그들이 오히려 우리를 ‘회개하여 어린이 같이’ 되게 해 주고, ‘작은 자’ 되게 하고, 복음화 시켜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그들이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해줄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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