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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8월 26일 _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18-08-26 조회수 : 320

2018. 08. 26 연중 제21주일


요한 6,60-69 (영원한 생명의 말씀)


그때에 제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말하였다. “이 말씀은 듣기가 너무 거북하다. 누가 듣고 있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의 말씀을 두고 투덜거리는 것을 속으로 아시고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말이 너희 귀에 거슬리느냐? 사람의 아들이 전에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보게 되면 어떻게 하겠느냐? 영은 생명을 준다. 그러나 육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영이며 생명이다. 그러나 너희 가운데에는 믿지 않는 자들이 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믿지 않는 자들이 누구이며 또 당신을 팔아넘길 자가 누구인지 처음부터 알고 계셨던 것이다. 이어서 또 말씀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나에게 올 수 없다고 너희에게 말한 것이다.”


이 일이 일어난 뒤로, 제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이 되돌아가고 더 이상 예수님과 함께 다니지 않았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에게,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모두들 떠나갔습니다.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통해 주린 배를 채워주셨는데, 이제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당신의 살과 피를 주시겠다고, 그래서 당신을 먹고 마시면 참 생명을 얻을 것이라고 그렇게 가슴 저미게 가르치셨는데, 눈이 멀어 보지 못하고 귀가 막혀 듣지 못하는 이들이 예수님을 떠나갔습니다.


떠나는 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눈에 맺힌 안타까운 눈물 자국이 오늘따라 더욱 안쓰럽게 다가옵니다.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과 함께 한다고 하지만, 정작 예수님께서 당신을 생명의 양식으로, 생명의 말씀으로 내어놓음으로써 이루고자 했던 하느님 나라가 이 세상 안에서는 너무나도 아득하게 느껴지지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많은데 정작 예수 그리스도는 뒷전으로 밀어낸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늘어가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온 몸과 마음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뜻을 실천하는 참 그리스도인을 찾기 어려운 이 세상의 모습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너희는 참으로 나와 함께 있느냐? 온 몸과 마음으로, 삶으로. 아니면 겉으로는 함께 있는 척하면서 실제로는 나를 떠나 너희의 생각을 따르고 있느냐?”


“주님,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스승님께서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라고 저희는 믿어 왔고 또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라는 시몬 베드로의 결단의 응답을 자신 있게 우리의 것으로 고백할 수 있습니까?


망설여집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삶이 십자가를 통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부활의 길이기에 망설여집니다. 어느 누구도 십자가를 지려고 하지 않는 세상 안에서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의 힘겨움과 외로움을 알기에 망설여집니다.


입으로만 예수님과 함께 있다고 고백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삶의 결단을 내리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이 이중적인 신앙인의 모습,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거짓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믿음! 그것은 끊임없는 결단의 과정입니다. 단 한 번의 결단만으로는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심연과도 같은 것입니다. 일상생활 안에서 끊임없이 우리 자신을 자극하는 예수님의 음성,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진정, 너희는 나와 함께 하고 있느냐? 아니면 나를 팔아 거짓 신앙생활을 즐기고 있느냐?” 라는 예수님의 물음에 “아닙니다. 당신과 함께 하겠습니다. 당신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참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 라는 결연한 응답을 통해서만 굳세어지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결코 지금의 자리에 안주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물음을 애써 외면하면서 자기 식의 편안한 신앙생활을 즐겨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함께 하는 것,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 전체는, 아주 작은 일상의 일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을 따를 것이냐? 아니면 예수님을 떠날 것이냐?’ 라는 선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 너희는 어떻게 하겠느냐? 너희도 떠나고 싶으냐?” 라는 예수님의 물음을 개인적인 신앙생활의 영역으로 축소해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물음은 온 생애를 거는 투신을 요청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가정에서, 자그마한 모임에서, 교회에서, 사회에서, 국가 그리고 세상에서, 사랑과 미움, 섬김과 지배, 화해와 갈등, 하나 됨과 갈라짐, 정의와 불의라는 기로에 서서 예수님을 따르는 신앙인으로서 결단을 내려야만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몹시 두려운 결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결단을 통해서만 참 생명을 얻을 수 있고, 신명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예수님을 떠나간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말입니다.


매순간 바로 결단의 때입니다. 뒤로 미루지 않고 이 자리에서 온 삶을 다시금 주님께 내어 맡기는 굳은 결단을 내리면서, 예수님과 그리고 믿음의 벗들과 함께 하기를 희망에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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