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연애편지 한두 번 써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저 역시 연애편지를 많이 써봤지요. 그런데 이 편지는 아무것도 모를 철모르던 어렸을 때 쓴 것이 아니라, 성인이 되어서 그것도 사제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신학생 때 썼었습니다. 누구는 ‘아니, 신학생 때 연애를 했다는 거야?’라면서 인상을 찌푸릴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군대에 있을 때 선임병의 부탁으로 어쩔 수 없이 쓴 것입니다.
선임병의 강요가 섞인 부탁에 억지로 쓴 것이지만, 연애 한 번 해 본 적이 없는 제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누군가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과연 연애편지를 잘 쓸 수 있었을까요? 한 글자도 쓸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이상할 정도로 너무 잘 써졌습니다. 선임병도 마음에 들어 했고, 편지를 받으신 그분(?) 역시 좋아했는지 선임병이 제대할 때까지는 계속해서 만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에 어버이날을 맞이해서 부모님께 감사의 편지를 쓰려고 펜을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도무지 써지지 않아서 얼마나 쩔쩔맸는지 모릅니다.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것만 같았습니다. 모르는 사람에게 쓰는 편지는 쉽게 써지는데, 잘 아는 부모님께서는 편지가 써지지 않은 것일까요?
남에 대한 이야기는 참 신나게 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못합니다. 이러한 습성 때문일까요? 모르는 사람에게는 편지를 거침없이 쓸 수 있었고, 정작 잘 아는 부모님께는 쓰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러한 습성을 버려야 합니다. 남에 대해서 특히 모르는 사람을 향해 외치는 나의 헛된 말을 없애고, 대신 가까운 이웃과 내 자신에게 진실하게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삶이 훨씬 더 의미가 있으며, 아름다운 삶이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왜 당신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할 뿐, 단식하고 기도를 하지 않으냐고 따집니다. 자기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남만을 바라보는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낡은 생각들, 이제까지 가지고 있었던 낡은 관습들을 모두 버리고, 새롭게 다가오시는 주님을 새로운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새로운 마음은 남을 향하고 있지 않습니다. 남에 대한 각종 부정적인 말로 시간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갈 수 있는 변화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모두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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