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젊은 때는 언제일까요? 10대부터 30대까지는 젊은 때일까요? 그렇다면 60대 이상은 늙은 때라고 말할 수 있나요?
은퇴 후에 60대에 자격증을 따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셨고 또 자격증을 취득한 분을 보았습니다. 이분에게 “이제 은퇴도 하셨는데 좀 쉬시지 또 공부를 하십니까?”라고 묻자, “왜요? 저는 아직도 젊은데요?”라고 오히려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이분을 보면서 언젠가 만났던 30대 후반의 형제님이 생각납니다. 이분께서는 지금의 삶이 너무 힘들다고 하시면서,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이제 나이가 많아서 할 수 없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새롭게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에서 말하는 나이의 많고 적음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인생의 젊은 때는 자신이 아직 할 수 있다고 믿는 때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이 글을 보시는 여러분은 젊게 사십니까? 아니면 늙게 사십니까? 바로 내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의 나이도 결정됩니다. 즉, 세상 나이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을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젊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의 내 모습을 한 번 떠올려 보십시오. 할 일이 참으로 많지 않습니까? 그만큼 젊은 삶을 살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할 일은 많지만 할 수 없는 이유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가면 그만큼 늙은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 도성을 보고 우십니다. 단순히 예루살렘 도성이 완전히 파괴되면서 겪게 되는 사람들의 아픔을 떠올리시면서 우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죄와 악에 물들어 타락해 있는 모든 사람을 생각하며 우시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면서 점점 더 주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실에 슬퍼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가 없는 사람들의 처지를 보시고 안타까워하십니다.
그렇다면 단순히 죄악에 빠져 있는 2천 년 전 사람들에 대한 안타까움일까요? 지금의 죄악 역시 당시와 비교하면 적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안타까움 역시 이 복음의 말씀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생각 없이 살아가는 모습에, 영원하지 않은 것에 모든 것을 다 쏟아 붓고 있는 모습에, 사랑보다는 미움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에 주님께서는 안타까움의 눈물을 흘리십니다.
주님의 안타까운 눈물을 거둬들일 수 있는 일들을 생각해보십시오. 참으로 많지 않습니까? 이 일들을 하나씩 해나갈 때, 우리는 젊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도저히 할 수 없다면서 포기하고 무시한다면 주님께 슬픔을 전해드리는 늙은 삶이 될 것입니다.
이제는 주님께 눈물보다는 웃음을 전해 드릴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조금만 생각하면서 의미를 찾으며 살아간다면 분명히 주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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