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수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멋진 금테 안경을 끼고 있고,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지고 있으며, 모차르트의 음악을 즐겨 듣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람의 직업은 다음 중에 무엇일지 맞춰보십시오. 확률이 더 높은 사람을 선택한다면 누구를 선택하시겠습니까?
1) 화물트럭 운전사.
2) 서울대학교 철학교수.
확률이 더 높은 쪽을 선택하라고 하면 대부분이 2번 서울대 철학교수를 선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확률적으로 틀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서울대 철학교수보다 화물트럭 운전사가 월등히 숫자적으로 많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확률 높은 쪽으로 선택하라고 하면 숫자가 많은 1번 화물트럭 운전사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확률이 낮은 쪽을 선택했을까요? 겉모습 때문이겠지요. 학구 풍처럼 보이는 금테 안경, 철학교수라면 많은 생각을 하기 때문에 살찌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여기에 그가 듣고 있는 모차르트의 클래식 곡은 교수임에 분명하다고 생각을 하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겉모습이 확률을 높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판단은 이렇게 제한적입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형편없는 판단력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이 다른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면서 대한다는 것 자체가 커다란 착각이 아닐까요? 가치 없다고 생각했던 사람이 가장 가치 있는 사람일 수도 있으며,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대상은 상대방이 아니라 바로 내 모습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누구든지 내 뒤를 따라오려면,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고 하십니다. 당시의 십자가는 가장 치욕적이고 잔인한 사형집행에 쓰이는 도구였습니다. 특별히 정치범과 흉악범들이 십자가에 매달려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따라서 이 십자가를 지고서 따라야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이 세상 안에서의 죽음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들고 불행의 길인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점으로는 이 세상의 판단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이 세상의 삶은 결코 영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라고 말씀해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지신 십자가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뜻을 따라서 철저히 살아가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나를 진정으로 살리는 구원의 길이 바로 이 ‘십자가’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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