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책 읽는 것이 왜 좋아요?”
어떤 분께서 제게 이러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왜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할까?’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답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냥요.”
왜냐하면 좋은 이유들을 세세하게 말하기가 너무나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굳이 말한다면 말할 이유가 참 많습니다. 새로운 지식을 얻을 수도 있고, 많은 생각들을 할 수도 있으며, 차분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밖에도 좋은 이유는 너무나 많습니다. 그러나 꼭 이유가 있어야 좋은 것일까 싶었습니다. 꼭 제게 도움이 되어야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사실 그 이유들을 찾으려다가 오히려 좋아하지 않게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부모들은 자녀에게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그리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들을 계속해서 제시합니다. 사실 공부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 때문에 공부를 하게 되면 실제로 흥미를 잃곤 합니다. 스포츠 경기도 그렇습니다. 경기에서 이기려는 이유가 왜 없겠습니까? 그러나 실제로 이기는 이유를 따르기보다는 그 경기 자체를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고 또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요. 사랑하는 연인들을 보십시오. 그들 역시 사랑의 이유를 찾지 않습니다. 그냥 함께 있는 것이 좋고, 함께 대화를 나누는 사실 자체에 행복해합니다.
우리 주님을 향해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주님을 믿는 이유를 반드시 찾아야만 할까요? 나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라는 이유로 믿는다고 한다면, 그 필요가 채워지지 않게 되면 주님을 외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바리사이들을 비롯한 유다인들의 모습을 보십시오. 그들은 “당신이 누구요?”라면서 당신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묻습니다. 이렇게 이유만을 찾다보니 주님을 향한 사랑도 있을 수 없고, 그래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주님께서 하신 말씀들,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많은 표징들을 보면서 주님의 사랑을 받아들였다면 이유를 찾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주님을 믿어야 하는 이유를 굳이 찾지 마십시오. 그 이유 때문에 사랑하고 믿는다면, 자신의 마음에 그 이유가 사라지면 오히려 싫어하고 미워하는 대상이 되고 맙니다. 예수님의 시대의 유다인들이 그러했지요. 예수님을 열렬히 환호하면서 맞이했다가 며칠 만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말합니다.
이유를 찾기보다는 주님께서 우리의 삶 안에서 보여주는 사랑에만 집중해 보십시오. 그냥 좋고, 그냥 사랑할 수 있으며, 그냥 믿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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