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9일 [주님 수난 성 금요일]
< 사악한 인간, 사랑의 하느님 >
마침내 예수님 수난의 때가 시작되었습니다. 공생활기간 동안 제자들과 함께 야영도 하시던 겟세마니 동산에서 예수님 일행은 적대자들과 마주칩니다.
손에 손에 등불과 횃불, 각종 살상 무기들을 든 중대 병력, 그리고 대사제들,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을 체포하려고 몰려왔습니다.
살기등등한 적대자들 앞에서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은 참으로 의연하고 당당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가장 중요한 순간, 마지막 때, 아버지께서 원하신 순간이 왔음을 직감합니다.
적대자들에게 밀려 뒷걸음질 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주어지는 모든 상황 앞에 순응하십니다.
그 숨 막히도록 끔찍하고 절박한 수난의 여정 매 순간 순간 중에도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태도는 눈여겨볼만합니다.
당신의 제자들을 다치게 하지 않으시려 애를 쓰십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들을 지켜주려고 노력하십니다.
“나 한 사람이면 족하지 않으냐? 이 사람들은 그냥 가게 내버려 두어라.”
뿐만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어떤 유형의 기적도 행하실 수 있는 메시아였습니다.
당신 한번 마음먹기에 따라 야비하고 파렴치하게 돌아가는 이 판을 순식간에 ‘확’ 뒤집어놓을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비폭력 노선을 고수하십니다.
‘욱’하는 성격 때문에 평소에도 예수님으로부터 많은 지적을 받아왔던 베드로 사도가 적대자들과의 대치 상태에서 성격을 죽이지 못해 칼을 뽑아 대사제 종의 오른쪽 귀를 잘라버리며 한판 제대로 붙기 위해 시동을 걸었습니다.
그 순간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그 칼을 칼집에 꽂아라. 아버지께서 나에게 주신 이 잔을 내가 마셔야 하지 않겠느냐?”
마침내 순순히, 자진해서 체포되신 예수님께서는 대사제 가야파의 장인 안나스를 거쳐 가야파에게로, 그리고 총독 빌라도 앞에 서십니다.
사실 빌라도 총독은 애초부터 복잡하고 민감한 ‘예수님 사건’에 휘말려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저 이 골치 아픈 식민지인 유다 총독 임기를 잘 마무리 짓고 더 좋은 보직에로 이동되고 싶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끌고 온 유다 사람들이 얼마나 사악한 사람들인지를 이미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무죄한 예수님에게 사형 언도를 내리게 한 다음 훗날 법을 남용한 자로 빌라도 자신을 로마 제국에 제소하는 일마저 마다하지 않을 이중적인 무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빌라도는 계속해서 예수님을 놓아줄 궁리를 찾습니다.
“나는 저 사람에게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하겠소.”
빌라도의 이 말은 몰려있던 유다인들의 분노를 자극했습니다.
빌라도는 그들을 일단 진정시키고 돌발적인 상황을 수습하시 위해 한 가지 묘책을 찾아냅니다.
아무 죄도 없는 예수님이지만 적당한 매질을 가하고 풀어줌으로서 유다인들의 분노와 소란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낮은 기둥에 묶게 한 다음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채찍질이 당하는 사람의 피부를 빨갛게 만드는 정도의 채찍질이 아니었습니다.
가죽 채찍의 끝에는 작은 납 구슬을 매달았는데, 그 채찍으로 예수님의 등과 가슴, 배, 머리를 향해 채찍질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저기 피부가 파열되면서 피가 솟구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사형수들이 십자가형에 처해지기도 전에 채찍질만으로 죽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많은 채찍질을 당했으면, 그리고 많은 피를 흘렸으면 십자가형에 처해진 다음 운명하시기 전까지 소요된 시간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입장에서 극도의 고통을 받았던 채찍질 보다 더 견뎌내기 힘들었던 것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병사들의 조롱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치 예수님을 노리갯감으로 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 같았습니다.
많은 출혈로 혼미해져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든 예수님 머리 위에 가시로 만든 왕관을 씌웠습니다. 어깨에는 자주색 옷을 걸치게 하여 예수님을 마치 희극 배우처럼 분장시켰습니다.
그리고 그런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고 인사하며 예수님의 뺨을 사정없이 쳐댔습니다.
이제 이만하면 됐겠지 하며 빌라도는 초죽음 직전의 예수님을 군중들 앞으로 인도한 합니다.
이 정도 했으면 됐겠지, 유다인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누그러들었겠지, 이제 사태가 이쯤해서 마무리 되겠지, 생각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자, 이 사람이오.” 바꿔 말하면 “보라, 이 사람을!”입니다.
그때에 수석사제들과 성전 경비병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이렇게 외칩니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참으로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교활하고 잔악하기로 한 이름 했던 빌라도 총독이었습니다.
그러나 빌라도는 예수님으로부터 아무런 죄목도 찾지 못한 나머지 어떻게 하면 예수님을 풀어주려고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동족인 유다인들을 보십시오. 자신들의 고집을 절대로 꺾지 않습니다.
빌라도와 계속 머리싸움을 벌입니다.
때로 빌라도에게 아부하고, 때로 빌라도에게 협박을 가하면서 자신들의 계획을 끝까지 밀어붙입니다.
그 결과 빌라도도 더 이상 어떻게 하지 못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그들에게 넘겨주고 맙니다.
예수님의 수난기를 묵상하면서 참으로 대단하신 하느님의 사랑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사람으로부터 고소당하고 사람으로부터 사형언도를 받으시는 하느님.
당신은 저들에게 구원을 주시려고 애써 인간 세상으로 강림하셨는데, 그런 예수님께 감사와 찬미, 봉헌과 사랑을 드려도 모자랄 판인데, 배신을 하고, 체포하고, 고소하고, 이리저리 송치하고, 마침내 사형을 언도하고...
오늘 성 금요일,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배신, 우리의 악행, 우리의 결례를 가슴 아파하고 속죄하는 거룩한 날입니다.
우리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마침내 완수되는 구원의 날입니다.
(살레시오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