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가톨릭 사제로 살아가다보니 죽음을 많이 보게 됩니다. 장례미사 집전도 많이 하기도 하지만, 임종 직전에 저를 불러서 기도를 해달라고 청하기도 합니다.
지금은 주님 곁으로 가셨지만 생각나는 한 분이 계십니다. 이분께서는 사회적으로 정말로 많은 일을 하셨고 소위 성공이라는 것을 체험도 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상시에는 얼마나 자신이 이룩한 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하셨는지 모릅니다. ‘너무 자기 자랑을 하시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지요. 그런데 큰 병을 앓으면서 이야기를 좀 나누고 싶다면서 저를 찾으신 것입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을까요? 오랫동안 이야기를 나눴지만 성공에 대한 이야기, 자신이 해놓은 일에 대한 이야기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보다는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아쉬움,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지 못했던 후회들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그래도 주님을 믿게 되어서 다행입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생의 마지막 순간에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십니까? “내가 돈을 얼마만큼 벌었고, 사회 안에서 여기까지 오른 사람입니다.”라는 세속적인 자랑의 말을 하고 싶습니까? 아닐 것입니다. 그보다는 이런 말을 하고 싶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는 사랑하는 아이의 부모였고, 부모를 존경하는 자녀였으며, 늘 감사하면서 주님과 함께 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 이러한 말을 할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지금 이 순간 그렇게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하나의 명령을 내리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돈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시지 않습니다. 높은 지위에 올라가서 사람들을 다스라는 말씀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삶을 마치고 나서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느님 나라에서 필요한 것은 사랑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은 나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받는 사랑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큰 사랑을 하라고 하지요. 그 큰 사랑은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정도의 사랑이었습니다. 받는 사랑이 아니라 다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 스스로 직접 이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들을 위해 십자가를 짊어지면서 큰 사랑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그 모범을 보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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