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가 다시 20살의 ‘나’로 되돌려 주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저 역시 이런 말을 듣게 되면 어떻게 할까를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먼저 ‘20살에 뭐 하고 살았지?’라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신학교에 들어가서 신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를 떠올리면 제대로 못살았습니다. 기도에 충실하지 못했고, 공부도 열심히 하지 못했습니다. 부족함이 가득했던 시간이었지요. 그렇다면 다시 20살로 되돌아가면 지금 더 멋진 신부가 되어있을까요? 부족함의 시간을 경험하지 못하면 그때보다 더 나은 ‘나’는 절대로 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친구 한 명이 요즘 너무 어렵다고 해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 없이 소위 잘 나갔던 친구였습니다. 단 한 번의 실패 없이 하는 일마다 잘 되던 친구였지요. 이 친구가 근래에 커다란 실패를 겪게 된 것입니다. 신용도 떨어진 상태라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면서 울먹이더군요. 이제까지 실패가 전혀 없었기에 지금 더 힘든 것이었습니다.
실패나 실수를 두려워하는 우리입니다. 그러나 삶 전체를 볼 때 반드시 있어야 하고 나를 성장시키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이러한 실패나 실수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20세로 다시 돌아가서 실패나 실수 없이 사는 것은 좋은 길이 아닙니다. 더 나은 ‘나’를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종말에 일어날 일을 알려주시며 그들에게 경계하라고 하십니다. 그때의 표징은 전쟁과 지진이 일어나고 곳곳에 기근과 전염병이 생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혼란이 넘칠 때 거짓 그리스도와 거짓 예언자가 나타나서 혼란을 가중한다고 하십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이 종말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서 두려움을 갖기에 충분했을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 노아의 대홍수 사건을 잘 알고 있었고, 또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야기도 알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그들의 역사를 보면 계속된 적들의 침략과 점령으로 인해 유배 생활까지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지금 현재는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야기가 절대로 근거 없는 이야기로 들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절망의 메시지만이 아닌 희망의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그러한 일이 반드시 먼저 벌어지겠지만 그것이 바로 끝은 아니다.”
세상의 멸망이 가까워진 만큼 구원자의 나라가 가까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끝장인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실패나 커다란 실수를 했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은 아닙니다. 주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너희는 인내로써 생명을 얻어라.”
좌절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해야 할 주님의 일을 실천하는 삶에서 우리는 생명을 얻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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