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못해.’, ‘너무 어려워.’, ‘너무 지겨워.’, ‘시간이 없어.’, ‘돈이 없어.’, ‘그럴만한 가치가 없어.’ 등의 변명을 많이 늘어놓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변명이라고 말한 이유는 하지 못할 이유만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으로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면 과연 좋은 결과를 얻을 수가 있을까요? 아마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미국의 철학자 윌리엄 제임스는 이러한 말을 했습니다.
“어려운 일을 시작할 때 태도가 그 무엇보다 성패에 큰 영향을 미친다.”
태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물론 쉽지가 않지요. 그러나 태도를 바꾸면 가능성은 그만큼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하지 못할 이유를 만들어 가는 태도를 바꿔서 할 수 있는 이유를 만드는 태도를 내 삶의 중심에 놓아야 할 것입니다.
어느 형제님께서 성당에 봉헌하는 것에 대해서 “제가 힘들어 죽겠는데 누구를 도울 수 있습니까?”라면서 봉헌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지만 반대로 이런 형제님도 계십니다.
“비록 적은 봉헌이지만 이것도 기쁘게 받아주셔서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누가 더 기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 봤을 때는 부자들의 헌금이 과부의 헌금보다 월등하게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보시는 것은 헌금의 액수가 아니었습니다. 부자들은 다른 이의 눈치를 보면서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봉헌하겠다는 마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정도면 충분하다는 생각도 했겠지요. 문제는 하느님께서도 이런 마음을 보고서 충분하다고 생각하실까요? 그보다는 봉헌 액수에 상관없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것을 기쁘게 봉헌하는 모습을 더 값지게 보십니다.
하느님께 기쁨을 봉헌할 수 있는 선행에 낯선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를 위해서는 태도의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 나는 가난해서 겨우 먹고살 뿐 남 도울 겨를이 없다는 이유를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이라도 기쁨을 가지고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이유를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늘의 저울은 눈에 보이는 예물의 양을 달지 않습니다. 영혼의 확고한 뜻을 가지고 하늘의 저울은 무게를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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