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1월 10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01-10 조회수 : 300

어떤 청년에게서 들은 고민 한 가지가 생각납니다. 그 고민은 같은 성당에서 활동하는 친구 한 명이 너무나도 밉다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이 친구를 미워할 특별한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미운 것입니다.

어떻게 그냥 미울 수가 있겠냐면서,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이 친구가 자기의 예전 여자친구와 지금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전 여자친구와는 완전히 끝난 관계이지만, 자기 친구가 전 여자친구 만나는 것을 보면서 괜히 미움의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자친구에 대한 미움이 성당 친구에게 옮겨간 것이었습니다.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마음에 미움이 가득할 때 어떻습니까? 그 어떤 사람도 예뻐 보이지 않습니다. 특히 미워하는 사람과 친한 누군가가 있다면 친한 그 사람이 자신에게 잘못한 것이 있는 것도 아닌데 괜히 미움의 대상이 되고 맙니다. 이런 마음으로는 세상을 기쁘게 살아갈 수 없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따라서 미움의 대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을 만드는 데 더욱더 집중해야 합니다.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아니라 사랑해야 하는 이유를 먼저 찾아야 합니다. 특히 나 자신을 위해서도 반드시 간직해야 하는 사랑의 마음을 잃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십니다. 그런데 나병 환자의 몸에 직접 손을 대시지요. 이는 이스라엘의 정결 규정을 어기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말씀만으로도 이 나병을 고쳐 줄 수 있음을 다른 예로도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에게 깜짝 놀랄만한 스캔들을 제공하는 행동을 하셨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구약시대에는 나병을 죄가 형상화된 것이나, 마귀가 들린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나병 환자로 선고받은 사람은 자기가 사는 곳에서 내쫓겨 그 외곽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그 의미는 유다인 사회에서 모든 것을 상실했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나병 환자를 함부로 다뤄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병 환자는 사랑을 받아야 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 역시 사랑을 받아야 할 하느님의 자녀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직접 당신의 손을 대신 것입니다.

우리 역시 예수님 시대의 유다인들처럼 사랑하지 않을 이유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런 모습으로는 주님을 따른다고 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지 않을 이유가 아니라, 사랑할 이유를 찾는 우리가 주님과 진정으로 함께 하는 모습이 됩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