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가 되고 나서 제일 힘들었던 점은 미사를 봉헌하는 것도 또 강론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물론 쉽다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로 어느 신부님께서는 “미사 강론만 없어도 신부로는 사는 것 정말 할만해.”라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저의 경우는 어떤 체험을 한 후 큰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위로해 줄 수 있는가였습니다.
서품받고 보좌신부로 첫 본당에 나가서 얼마 안 되었을 때였습니다. 아주 이른 새벽에 사제관 전화가 울렸습니다. 어머니께서 갑작스럽게 쓰러지셨다며 병원에 와서 병자성사를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곧바로 병원에 가서 병자성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선종하신 것입니다. 당황스러웠습니다. 마치 저 때문에 돌아가신 것만 같았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오열하는 자녀들을 어떻게 위로를 해야 할지, 나 자신이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습니다.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전해줘야 할지를 도저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주임신부님께 새벽에 병자성사를 주고 왔다는 것과 함께, 저의 고민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해주시더군요.
“인간의 위로는 그렇게 대단하지 않아. 진정한 위로는 하느님만 가능한 것이지.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병자성사 주는 것까지야.”
인간은 대단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지 자기 칭찬하느라 바쁜 사람들이 많습니다. ‘나는 다른 인간들과 다르다!’라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자기 자랑을 일삼는 사람이 존경받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그것도 남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인정받으려는 모습은 사람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뿐입니다. 다른 이에게 큰 모범이 되는 행동을 했어도 그 행동 자체의 의미가 자기 자랑을 통해서 사라지게 됩니다.
의사를 찾아간 환자가 자기 자랑만 하고 있다면 또 남의 상처만 이야기한다면 제대로 치료가 될 수 있을까요? 환자는 오로지 자신의 아픈 상처만을 온전하게 드러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 앞에 선 우리는 바리사이와 다른 세리의 모습을 취해야 합니다. 그는 바리사이와 달리 자기 상처를 감추고 남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허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그대로 보여드렸습니다. 이러한 겸손한 모습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으며 살아가는 참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바리사이의 기도가 아닌, 세리의 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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