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어느 청년의 결혼식 주례를 맡은 적이 있습니다. 결혼식이 끝나고 아는 지인들이 제게 다가와서 말을 건넵니다.
“신부님, 오늘 주례사가 너무 감동적이었습니다.”
강론이나 강의에 대해 평소 부정적인 평가를 잘 받지 않는 저입니다. 긍정적인 평가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주례사가 좋았다고 하는 말을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이게 됩니다. 그러면서 문득 ‘신랑 신부도 마음에 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랑 신부에게 다가가 다시금 축하한다는 인사를 전하는데, 이번에도 신랑 신부가 거의 동시에 “신부님, 오늘 결혼식 주례사 너무 좋았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좋았다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지만, 어떤 내용이 좋았는지가 궁금해서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신랑이 잠깐 망설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글쎄요……. 음……. 짧고 명쾌했습니다.”
주례사의 내용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더 좋았던 이유는 짧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내용 때문에 좋아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저의 큰 착각이었습니다.
우리는 종종 착각에 빠집니다. 내 생각과 다른 이의 생각을 같게 여길 때도 있고, 내 생각과 판단에 세상의 모든 지혜가 담긴 것처럼 여겨서 나만 맞는 것으로 착각하기도 합니다. 나와 다르면 죄인 취급하는 것 역시 우리의 잘못된 착각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 오류를 담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은 인류의 역사 안에서 계속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반대했다는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이 착각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습니다. 진짜 지혜가 아니라 단지 지혜처럼 보이는 것뿐인데도, 자신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주님의 뜻을 따르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이렇게 감사의 기도를 바치십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철부지 같은 제자들에게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겸손 안에서만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수 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런 겸손의 덕을 갖추고 있을까요? 그래서 주님께서 바치시는 감사 기도의 주인공이 되고 있을까요?
주님께서도 당신 자신을 스스로 낮추심으로 인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직접 모범으로 보여주셨습니다. 이 모범을 따라, 우리도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 겸손 안에서만 하느님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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