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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9월 11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09-11 조회수 : 302

중학교 때, 학교 옆에 커다란 시립 도서관이 생겼습니다. 공부하는 곳이 학교와 집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에 선택지로 ‘도서관’이 더해진 것입니다. 더군다나 도서관의 지하 매점에서는 말도 안 되는 음식을 팔고 있었습니다. ‘컵라면’. 지금은 흔하고 또 종류도 많았지만, 당시에 컵라면은 정말로 새롭고 놀라운 음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도서관에 가는 것을 더욱더 좋아했습니다. 집이나 학교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공부하다 보니 집중도 잘 되는 것 같았습니다.

기말고사 바로 전날, 도서관에 갔습니다. 그런데 저 멀리 제 친구가 보이는 것입니다. 도서관 구석에서 아주 열심히 공부하고 있더군요.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서 모른 척을 했습니다.

다음 날 학교에서 이 친구에게 “공부 많이 했어?”라고 물었습니다. 이 질문에 이 친구는 “나 어떻게 하지? 온종일 텔레비전만 봤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것을 봤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말했을까요?

“나도 그런데. 나도 텔레비전 보느라 공부 하나도 못 했어.”

왜 서로 거짓말을 했을까요? 시험 망쳤을 때의 보험을 미리 두는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시험성적이 나쁘면 창피하니까 말이지요. 바로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고 있어서 때로는 거짓말도 하는 우리입니다.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나 자신을 먼저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먼저 바라보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낮추고 나를 높이려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에서 나오는 판단은 과연 옳다고 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복음 말씀은 어제의 ‘심판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이어지는 비유들로, 주님의 뜻을 잘 드러내 줍니다. 우리가 남을 심판하면 최후의 심판 때 같은 모습으로 단죄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남을 심판하려고 할 때, 나 역시 같은 죄를 어쩌면 그보다도 더 큰 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단죄하지 말아야 합니다. 단죄받지 않을 것입니다. 남을 심판하려는 마음조차 먹지 말라고 주님께서는 단호하게 우리를 설득하십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시선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큰 잘못들과 거역하는 욕정들에서 나 자신부터 건져낼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다음에야 작은 죄를 지은 사람을 바로 잡을 자격이 생기지 않을까요?

오늘 독서의 사도 바오로처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힘쓸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부터 바로 잡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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