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마다 글을 쓰는 습관이 다양합니다. 어떤 작가는 밖에서 열쇠로 잠가서 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하고, 벌거벗은 상태로 있어서 나가지 못하고 글만 쓰는 작가도 있습니다. 썩은 사과를 서랍에 넣어두고서 글 쓰는 것이 막혔을 때 냄새로 자극을 받는 작가도 있고, 어떤 작가는 글이 안 써질 때 수학 문제를 푼다고 합니다.
저도 부족하지만, 책을 아홉 권이나 출판했기 때문에 작가 언저리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저만의 글 쓰는 습관은 없는 것 같습니다. 굳이 있다면 어떻게든 계속해서 글을 쓰려고 한다는 것 정도입니다. 그런데 저의 이 말을 듣고서, 어떤 작가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작가들이 다양한 집필 습관을 지니고 있지만, 모든 작가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계속 썼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글을 쓰는 꾸준함이 아름답고 멋진 글이 나오게 하는 가장 큰 이유였던 것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방법은 아주 다양합니다. 기도와 묵상 등의 영성 생활을 통해서, 사랑을 실천하는 봉사와 희생을 통해서, 그 밖의 다양한 방법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습니다. 그 어떤 방법도 다 훌륭하고,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을 잘 따르는 사람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기도를 했느냐가 아니라 꾸준히 기도했는가였습니다. 한 번의 커다란 희생과 봉사를 했느냐가 아니라 꾸준히 희생과 봉사를 했느냐였습니다. 기분이 좋을 때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 안에서 매 순간 주님을 바라보면서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은 성 십자가 현양 축일입니다. 주님께서 인류의 죄에 대해 속죄하시려고 짊어지신 십자가를 묵상하고 경배하는 날입니다. 십자가 현양 축일인 오늘,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자기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고 있는지를 반성했으면 합니다. 이는 어느 한순간, 그리고 한 번으로 충분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계속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구원을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달아 놓은 구리 뱀을 쳐다본 사람만이 살아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죄의 홍수 안에서 주님을 바라봐야지만 살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생명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때 죄가 용서되는 치유가 있을 것이며, 영원한 생명도 주어지게 됩니다.
나의 꾸준함은 어떠했을까요? 특히 주님께 꾸준한 모습으로 나아가고 있습니까?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