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운영하는 카페에 어떤 분이 건의의 글을 올리셨습니다. 저의 묵상 글을 많이 보시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미치는 효과가 클 것이라면서 글을 바로 써달라는 부탁이었습니다. 그럴 수 있겠다 싶어 댓글에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더욱 신경을 써서 글을 쓰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사실 이 글을 보고서 그렇게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괜히 트집을 잡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고, ‘내가 전문적으로 글 쓰는 사람도 아닌데 이 정도도 이해하지 못하나?’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글을 많은 분이 보신다는 사실은 분명히 맞기 때문에,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문법에 관련된 책들을 사서 공부하다 보니 그동안 얼마나 무식하게 글을 써왔는지를 알 수가 있었습니다.
국어학자도 또 전문작가도 아니어서 많은 실수를 하는 저입니다. 따라서 늘 배우는 자세로 다른 분의 말을 잘 듣고 스스로 고쳐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교만과 부정적인 마음으로 인해 비판하려고만 하지 정작 나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 않았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모릅니다. 발전은 없고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은 성 마태오 사도 복음사가 축일입니다. 마태오 축일이기에 오늘 복음에서는 그의 부르심 장면이 나옵니다. 세리였던 마태오는 한순간에 사도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사도가 되기 위한 어떤 계획도 그는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그저 주님의 부르심에 곧바로 응답했을 뿐이었지요.
세리라는 직업을 가지고 세상일에 파묻혀 있었지만, 그의 마음에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겸손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그를 주저 없이 선택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하느님께 파묻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에는 주님을 받아들이는 겸손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그들을 선택하지 않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속 깊은 곳을 잘 아시는 예수님이십니다. 과연 우리를 부르실까요? 부르지 않으실까요?
마태오 복음 사가는, 세리와 죄인으로 살다가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으로 올 모든 사람에게 하늘의 잔치를 그려서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의사처럼, 필요할 때마다,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때마다, 영혼을 치유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영혼이 아픈 이들과 관계를 늘 맺으십니다. 그들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그래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의지가 아니라, 예수님과 함께하려는 겸손이라는 마음입니다. 이 겸손함 없이는 주님의 선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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