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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0-05 조회수 : 372

지난 7월, 몸에서 약간의 이상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아랫배에 계속 통증이 있고, 아침저녁으로 다리가 붓는 것입니다. 어느 신부에게 제 상태를 말하니, “나도 피곤하면 그럴 때가 있더라.”라면서 별 것 아닌 것처럼 말합니다. 또 다른 신부는 자신은 어디가 아프다면서 저의 통증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말합니다. 이 별 것 아닌 것을 가지고 병원에 가면 안 될 것 같아서 꾹 참았습니다. 그러다가 병원에서 근무하는 신부에게 제 증세를 이야기하면서 물었더니, 곧바로 응급실로 오라는 것입니다. 제가 꾀병 부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면서 빨리 검사하자는 것이었지요.

이 말만으로도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른 신부들의 말에는 서운함과 거리감을 얻게 되었는데, 이 신부는 저를 믿어준다는 것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가장 큰 위로는 믿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경험을 말해주는 것도, 저를 진단해주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나의 어려움, 아픔을 믿어주면서 이를 해소할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위로이며 힘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보여 주셨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모든 가르침은 두 날개, 곧 이 두 계명 위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즉,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아는 것은 거룩한 육화의 신비를 아는 것이며, 이는 곧 진리를 아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는 것에서 그쳐서는 안 됩니다. 바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복음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말씀입니다.

강도를 만나 초주검 상태가 된 이를 보고서 사제와 레위인은 그냥 지나갑니다. 이들은 자기 입장을 내세워 생각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는 길, 성전에서 정화예식을 마치고 깨끗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피 흘리는 초주검 상태의 모습은 분명히 부정한 상태라서 자기도 부정하게 될까 봐 피했던 것입니다. 또 당시에 강도가 많았기에 낯선 사람의 모습에 의심하고 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믿지 못하는 사제와 레위인과 달리,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를 만난 사람의 상처를 싸매 주고 여관에 가서 돌봐줍니다. 그를 믿었던 것입니다. 이 믿음이 사랑으로 표현된 것이지요.

주님께서 누가 이웃이 되어 주었다고 생각하느냐고 묻습니다. 바로 믿음을 가지고 자비를 베푼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가서 너도 그렇게 하여라.”

입으로만 사랑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믿어줘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보여 주신 사랑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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