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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15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0-15 조회수 : 380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 현실화하면, 어떻게 하십니까? 아마 믿을 수 없다고 하면서 옆 사람에게 이러한 부탁을 하시는 분도 있지 않을까요?


“이게 꿈이야 생시야? 정말인지 내 뺨 좀 꼬집어 주세요.”

뺨을 꼬집어서 통증이 오면 현실이라는 것이지요. 이렇게 고통을 느낀다면 살아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고통과 아픔이 전혀 없다면 살아있는 것이 아니라, 꿈을 꾸고 있거나 죽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자신의 삶에서 왜 이렇게 고통이 많은지 모르겠다며 눈물짓는 분들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비록 힘들고 죽을 정도로 버겁기도 하지만, 분명히 살아있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삶을 선택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삶의 증거라고 할 수 있는 고통과 시련을 피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서 힘든 사람이 많습니다. 치킨집을 운영하는 어떤 형제님도 바이러스 확산으로 손님이 줄어서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그 순간, ‘배달을 전문으로 해보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일부러 지금 막 튀긴 치킨을 들고 아파트를 다니면서 냄새를 풍겼다고 합니다. 지금 현재, 바이러스 문제가 없었던 때보다 더 높은 수익을 보고 있다고 합니다. 고통과 시련에 그냥 머문다면 어떨까요? 아마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고통과 시련을 넘어서자 기쁨의 삶이 옵니다.

주님을 따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먼 훗날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지금의 삶에 더 큰 목적이 담겨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죽음에만 관여하시고, 삶에는 전혀 상관없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 연연하면서 고통과 시련에 대한 불평불만만 가득합니다.

불행선언의 주인공이 된 율법학자와 바리사이의 모습을 생각해보십시오. 그들은 과거에만 연연하면서 지금을 제대로 살고 있지 않았습니다. 율법의 핵심은 사랑인데, 사랑은 보지 않고 율법에 나와 있는 세부 조항을 지킬 것을 강조하면서 굴레를 더욱더 무겁게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겪는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는 나중에 죽어서 하느님께서 갚아주실 것이라는 달콤해 보이는 말만 할 뿐이었습니다. 이런 위선으로 인해 불행선언의 주인공이 됩니다.

지금의 삶에 충실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것이 삶의 또 다른 모습임을 인정하면서 주님과 함께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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