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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0월 2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020-10-22 조회수 : 424
누군가에게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가져야 할 생각은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가 있어? 다시는 안 만나겠어.’가 아닙니다. 그보다 ‘그도 아프지는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입니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아픔은 늘 산처럼 크고, 상대는 그냥 편하게 살면서 욕심만 부린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떤 아버지가 아들로부터 도와달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역시 지금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도와줄 수가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이 거절에 돌아온 아들의 대답은 문자 한 통이었습니다.

“아버지! 이제 아버지를 찾지 않겠습니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충격적인 이 문자 메시지에 전화해도 받지 않았고, 문자를 보내도 대답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아버지 회사는 부도 처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정말로 아들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지요.

아들의 상처, 아버지의 상처. 누가 더 클까요? 각자의 처지에서 가장 큰 상처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아프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지 않으면, 이렇게 서로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의 아픔만을 바라보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하는 세상이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힘있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평화의 하느님으로 고백하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세상의 모습과 다르게 사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가족의 분열이 일어나게 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세상의 모습과 분리되는 삶을 살아야 하고, 주님의 뜻을 실천하도록 마음에 성령의 불이 활활 타올라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의 삶이었습니다. 자기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는 ‘그도 아프지 않을까?’라는 마음으로 바라볼 수 있는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과 분리되는 곳에서 아픔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을 굳게 믿고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때 순간의 아픔에서 벗어나서 커다란 기쁨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향한 길이 열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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