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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12월 16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0-12-16 조회수 : 1224

어느 예비신자로부터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마음의 평화를 얻으려고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지만, 성당에는 하지 말라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려면 안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이것도 저것도 하지 말라고만 하니 오히려 마음에 평화가 사라집니다. 제가 계속 다녀야 할까요?”


주님의 말씀을 속박이나 간섭 등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법은 이 세상을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합니다. 예를 들어, 길을 건너는 신호등을 보고서 “누가 나를 구속하려는 거야?”라면서 아무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커다란 혼란이 찾아올 것이고, 힘없는 사람은 더 큰 아픔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함께 살 수가 없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속박이나 간섭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함께 잘 살 수 있도록 하는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고 따르면 마음의 평화를 얻으면서 함께 살게 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속박이나 간섭으로 생각하면서 거부하게 되면 온전히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그토록 얻고자 하는 마음의 평화도 내게서 사라질 것입니다.


요한은 자신이 예수님에 대해 한 말을 확인시켜 주려고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냅니다. 자신이 죽기 전에 제자들이 힘을 얻어, 목자 잃은 양들처럼 흩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내가 메시아다’라고 대답하는 대신, 당신이 ‘오실 분’임을 보여 주는 기적들을 일으키십니다. 루카는 기적들을 강조함으로써 이사야가 예고한 구약의 예언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합니다. 그러면서 행복한 사람이 어떤 이인지를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의심을 품지 않는 이는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을 의심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속박이나 간섭이 아닌, 함께 살아가는 행복을 체험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 당시에 행복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주님의 기적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을까요? 놀라운 기적을 한두 번 목격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해서 또 다른 표징만을 요구합니다. 예수님 존재에 대한 의심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기적을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의심을 버리고 믿었던 사람은 주님의 말씀만으로도 커다란 행복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한 사람은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 시대의 이스라엘 사람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해서 하느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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