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자매님께서 남편에 대한 걱정이 늘 컸습니다. 바로 ‘담배’ 때문이었습니다. 이제는 아무 데서나 담배를 피울 수 없는 세상인데도, 남편은 도대체 담배를 끊지 못합니다. 담배 끊으라고 그렇게 바가지를 박박 긁어도, 남편은 “나의 유일한 낙인데 어떻게 끊을 수가 있니?”라고 말하면서 담배를 피웁니다. 그래서 아내도 점점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리 이야기해도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어느 날, 어린 아들이 무엇을 보고 왔는지 마구 우는 것입니다. 아들이 본 것은 금연 광고였습니다. 목에 구멍도 뚫리고 죽을 수 있다는 광고 내용에 충격을 받은 것입니다. 늦은 저녁 회사를 마치고 집에 들어온 남편에게 안긴 어린 아들이 펑펑 울면서 말합니다.
“아빠! 제발 담배 끊어. 계속 담배를 피우면 목에 구멍 뚫리고 폐암 걸리고... 엉엉... 아빠 죽는데... 엉엉...”
아빠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드디어 담배를 끊었습니다. 사랑하는 아내의 말에도 절대 흘리지 않았지만, 어린 아들의 울음에 결국 지고 말았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힘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힘의 크기는 세상에서 말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세상의 눈으로는 힘없어 보이는 것이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엄청난 힘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힘을 따라야 할까요?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사람들 앞에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라고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장 큰 힘으로 다가왔던 것은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라서 어떤 사람을 죽을 수도 또 살 수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은 율법을 믿으라고 외쳤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율법이 아니라, 복음을 믿으라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기쁜 소식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먼저 회개하라고 하십니다.
율법이 진짜 힘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더 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당시의 이스라엘 사람은 예수님을 거부하게 됩니다. 진짜 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1독서에서는 니네베 사람들이 요나의 말을 듣고서 하느님을 믿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결과 구원을 얻을 수가 있었습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게도 하느님을 믿으라는 외침이 들려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을 믿으라는 희망의 외침입니다. 그런데 이 말보다는 세상의 가짜 힘 있는 말에만 집중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바오로의 말씀처럼, 때가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1코린 7,29참조). 우리의 말과 행동을 바꿔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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