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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실 작성일 : 2021-02-02 조회수 : 2626

철학자 츠다 이츠오는 그의 책 ‘침묵의 대화’에서 일상 속 평범한 행동을 ‘신을 모시듯’ 하라고 권합니다.


“비질하거나 목욕하는 것 혹은 요리하는 순간은 신에 대한 존경과 헌신을 표현할 기회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의 손길이 묻어있는 곳이기에 어디에서든 하느님을 느낄 수 있고 또 하느님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하느님께 대한 존경과 헌신을 하고 있어야만 합니다.


문제는 하느님을 잊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어디에나 계신 하느님이지만, 어디에도 안 계신 하느님인 것처럼 생활합니다. 그래서 정성을 기울이지 못하고,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생활 자체가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전혀 바뀌지도 않고 오히려 더 나쁜 쪽으로 나아가고 있다면, 입으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전혀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누구는 “하느님 믿는 사람이 왜 그래?”라고 말합니다. 물론 상대방의 입을 다물게 하려고 또 망신을 주려고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것처럼, 말만 하고 실제로는 믿지 않는 사람이 많다는 증거는 아닌지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성모님께서 모세의 율법대로 정결례를 치르시고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하느님께 봉헌하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구약성경의 정결례 규정(레위 12,1-8)에 따르면 산모가 남자아이를 낳으면 40일간, 여자아이를 낳으면 80일간 정결하지 못한 상태가 됩니다. 그래서 이 기간이 지나면 속죄 제물을 사제에게 바치고, 사제는 이 제물로 산모의 부정을 벗겨줍니다.


또 첫 번째 남자아이는 하느님의 소유라는 탈출기 13장 2절의 말씀에 따라, 하느님께 바친 뒤에 되돌려 받아야 했습니다. 이 규정에 따라 성모님과 요셉 성인 아기 예수님을 성전에 바치고 제물로 속량 예식을 치른 것입니다.


아직 말도 못 하는 갓난아기였던 예수님의 상태에서 하느님께 봉헌되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평생 하느님을 잊지 않고 하느님의 영광을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삶을 사셨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봉헌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떠했을까요?


주님의 봉헌 축일을 기억하면서, 우리의 봉헌 삶에 대해서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입으로만 봉헌된 삶이 아닌, 온몸으로 봉헌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말이지요.


잘 개발되어야 합니다.


몇 년 전, 영국 의학 전문지 “British Medical Journal”의 설문 조사에 따르면(의학 종사자 대상), 1840년 이후 의학계의 성과 1위는 하수도와 깨끗한 물이었습니다. 항생제, 마취, 백신, DNA 구조 발견 등을 생각할 것 같았지만, 의학에 종사하는 사람이 볼 때는 하수도와 깨끗한 물이 의학계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보는 것입니다.


21세기에 들어와 보편화된 하수도 시설 덕분에 인간은 수인성 전염병에서 해방될 수 있었고, 실제 수명이 35년가량 늘어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지금도 저소득 국가, 개발 도상국에서 물과 위생 문제로 매년 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면 하수도와 깨끗한 물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볼 때, 자연 그대로 두는 것이 늘 옳은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때로는 인간을 위해 더 깨끗한 자연을 위해 최소한의 개발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환경문제를 이야기하면서 개발 금지를 외치는 것이 반드시 맞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환경을 위해 잘 개발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더 큰 지혜와 바른 판단력이 요구됩니다.


(조명연 마태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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