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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0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2-20 조회수 : 2681

계급과 신분 사이의 벽을 완전히 허무시며, 
격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예수님! 
 
 
언젠가 지방에 출장을 갔다가 한적한 오전 시간 동네 목욕탕에 들어간 적이 있었습니다. 
매표소 아주머님께서 대뜸 제게 물었습니다. 
“협회 회원이신가요?” “네? 무슨 협회요?” “아, 아니면 말고요. 협회 회원이면 천원 할인해 드리거든요.” 
 
‘협회? 무슨 협회지?’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욕탕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저는 화들짝 놀랐습니다.
탕속에는 커다랗게 용 문신 하신 분, 호랑이 문신 하신 분 등등이 떡하니 앉아들 계셨습니다. 
저는 서둘러 샤워만 하고 신속히 그곳을 빠져나왔습니다. 
 
사실 저는 조직원들과 별로 안좋은 경험이 있었습니다. 
혈기왕성하던 시절, 돈보스코를 따라한다고, 역근처에 가출 청소년들 수용시설 만든다고, 서울역이나 영등포역 주변 집 보러 많이도 돌아다녔습니다. 
 
결국 허름하나마 시장 안에 전셋집을 하나 구해서 아이들을 데리고 오는 과정에서 ‘그분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한때 유행했던 조폭 미화 영화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기대하시면 큰 오산입니다. 
그들에게는 의리고 뭐고 없었습니다. 
그저 협박과 폭력, 갈취와 공갈이 전부 다였습니다. 
 
“왜 우리 애들 데리고 가냐? 데리고 가려면 한명당 천만원씩 내놔라! 
이거 허가 받고 하는거냐? 확 쓸어버린다!” 
 
오늘 예수님께서 레위를 당신 제자로 부르시는데, 예수님 시대 세리들은 오늘날 그분들과 비슷했습니다.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자릿세 받고, 고리대금업에 손도 대고, 과도한 이자 부과로 사람들 괴롭히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레위는 말단 세리가 아니라 중간 보스 정도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큰 형님에게 거금을 상납해서 일정 담당 구역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 담당구역을 돌며 마음껏 폭행과 갈취를 일삼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시대 당시 세리들의 악명은 하늘을 찔렀습니다. 
백성들을 그들을 두고 공공연하게 ‘도둑’이라고 칭했습니다. 
상종하지 말아야 할 인간으로 첫손가락을 꼽았습니다. 
얼마나 사람들을 들들 볶아대던지 ‘세리가 다가오면 집들이 공포에 떤다’는 말까지 돌았습니다. 
 
더구나 유다 민족들은 징수된 세금이 식민지 지배자 로마로 흘러간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세리들을 매국노, 배신자, 배교자로 칭했으며 재판정에 증인으로 서는 것조차 금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중간 레위를 당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이 모습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을 깜짝 놀랐습니다. 
어부 출신 사도들도 마찬가지로 놀랐을 것입니다. 
어떻게 저럴 수가, 어떻게 저 사람을 제자로 삼을 수가, 하며 다들 혀를 내둘렀습니다. 
 
참으로 파격적인 예수님,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예수님의 인선이었습니다. 
갈 때 까지 간 세리, 공공연한 도둑, 매국노 레위에게 당신 구원 사업의 한 축을 담당하도록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참으로 큰 위안을 받습니다. 
 
더 놀랄 일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세리라는 직업을 떠나 예수님의 제자가 된 레위를 위한 송별식이 벌어졌습니다. 
그야말로 조폭들의 파티였습니다. 
그 잔치에는 당대 내놓으라는 지하 세계 인생들은 다 모였습니다. 
 
참으로 부담스런 자리, 너무나 껄끄러운 자리가 분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태연히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으십니다. 
완벽하게 그들과 동화되십니다. 한 가족이 되시고, ‘절친’이 되십니다. 
 
계급과 신분 사이의 벽을 완전히 허무시는 예수님, 격식 따위는 안중에도 없으신 예수님, 우리의 죄와 허물보다는 미래와 가능성에 더 초점을 맞추시는 예수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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