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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2월 21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2-21 조회수 : 2812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깊은 광야로 들어갑시다! 
 
언젠가 성지 순례 때 잠시나마 광야 이곳저곳을 걸어 다닌 적이 있습니다. 
즉시 다가온 느낌은 황량함이요 삭막함이었습니다. 
 
광야 한 가운데 서서 아무리 둘러봐도 제대로 된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머무를 곳도 쉬어갈 곳도 없는 불모지, 뱀과 전갈만이 위협하는 고통과 죽음의 땅이 광야입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시시각각으로 기후가 변하는 곳, 때로 뜨거운 태양의 열기나 무지막지한 광풍으로 정신이 혼미해지는 곳, 
우리의 미성숙, 거짓신앙, 값싼 신앙, 유아기적 신앙이 낱낱이 드러나는 곳, 한 마디로 고통스러운 장소가 광야입니다. 
 
모든 것이 결핍된 장소, 우리 각자의 맨얼굴과 인간적 한계를 명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장소, 생각과 마음이 단순화되는 장소, 하느님께 더욱 절박하게 매달리는 장소가 광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렇게 때로는 고통의 장소, 때로는 은총의 장소인 광야를 40년 동안 걸어가면서 자신들의 신앙 안에서 그릇된 요소들을 정화시켜나갔습니다. 
 
우상숭배에서 유일신이신 하느님께로 돌아섰습니다. 
형식적인 신앙, 위선적인 신앙에서 진실하고 견고한 신앙으로 변모시켜나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약속의 땅에 입국하기에 합당한 신앙공동체로 거듭 태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신 하느님께서는 가끔씩 당신이 사랑하는 자녀일수록 더 자주 광야로 몰아넣으십니다. 
우리가 원치도 않는 쓰디쓴 광야를 체험케 하시는데 그 이유를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사순시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중차대한 과제 중에 하나가 ‘광야’에 대한 의미부여 작업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광야 체험을 통해 나 자신이 아무 것도 아닌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게 하십니다. 
또한 광야 체험을 통해 나 자신의 어둡고 부끄러운 내면을 직시하게 하십니다. 
더불어 광야 체험을 통해 우리의 뾰쪽뾰쪽 모난 부분은 다듬도록 인도하십니다. 
 
깊은 고독과 단절 속에 걸어온 광야 체험 힘겨운 여정이었지만, 동시에 거듭 날 수 있었던 은혜로운 순간들이었습니다. 
 
이번 사순시기 동안 우리는 본격적인 공생활의 시작 전 예수님의 40일을 눈여겨봐야겠습니다. 
성령의 인도로 그분께서는 유다 광야로 들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장 40일 동안이나 유다 광야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와 단둘이 머물면서 그분의 진정한 뜻이 무엇인지? 
그분께서 자신에게 부여하신 사명의 본질이 무엇인지? 간절히 찾으셨습니다. 
 
그냥 기도하신 것이 아니라,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쳐,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그 결과 마침내 그분께서는 정답을 찾으셨고, 기쁘고 당당한 모습으로 세상 안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순시기를 보내는 우리도 예수님을 따라 깊은 광야로 들어가야겠습니다. 
우리 안에 내적 광야, 텅빈 공간, 마음의 여유를 마련해야겠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나 단둘만 들어올 수 있지, 그 누구도 침해하지 못하는 나만의 감실, 내 안의 성전 하나를 건설해야겠습니다. 
 
이번 사순시기, 우리 손에서 놓으면 죽을 것 같은 것이 무엇인지 한번 곰곰히 헤아려보면 좋겠습니다. 
사실 손에서 놓으면 죽을 것 같았는데, 놓아보니 꼭 그렇지도 않더군요. 
 
우리 시대 또 다른 하느님이 되신 스마트폰, SNS, 신용카드, 술, 담배, 깊이 빠져버린 취미활동...
과감히 우리 손에서 한번 내려놓고, 하느님 아버지와 나 단둘만 머물수 있는 내 안의 성전으로 자주 들어가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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