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주보

수원주보

Home

게시판 > 보기

오늘의 묵상

2월 27일 _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작성자 : 관리자 작성일 : 2021-02-27 조회수 : 2672

어렵고도 어려운 원수 사랑, 주님의 십자가를 통해서는 가능합니다!
 
 
운전 중에는 언제나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고정입니다. 반가운 김남조 마리아 막달레나 시인께서 출연하셨습니다.
저도 가뭄에 콩나듯이 출연하는 ‘행복을 여는 아침’ 초대석에 나오셨더군요.
아흔을 훌쩍 넘긴 연세에도 총기와 시심(詩心)은 여전했습니다.
 
몇몇 말씀들이 오늘따라 사무치게 다가왔습니다.
“인생의 끝자락, 추수 끝 황량한 들판에서 서서 뒤돌아보니, 그 모든 것이 다 사랑이었습니다.”
“주님께 드리는 것, 바치는 것, 봉헌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고통도 드리고, 상처도 드리고, 기쁨도 드리고, 사랑도 드리는 가운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응답하십니다.”
 
사순시기를 보내고 있는 애청자들을 위해 직접 최애시(最愛詩)를 낭독해주셨는데, 정말이지 감동이었습니다.
 
 
우도(右盜)의 비유
 
주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양 옆에
두 사형수가 함께 처형되었다.
주님이 오른편 죄수의
신심을 읽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다.
 
내가 나에게 물었다.
주님 곁에서
우도처럼 죽을 수 있겠는가?
나는 불가능을 능히 알았다.
그러나 동트는 새벽녘에
“할수 있다.”고 대답했다.
 
주님의 고통
그 한 부스러기가
안개와 눈물로
평생 같은 긴밤을
몽롱하게 나를 적시더니
이 대답에 이르렀다.
 
오늘 주님께서는 그 어려운 원수 사랑에 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상식선에서는, 인간의 마음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당부를 하고 계십니다.
하다 하다 안될 때 결국 방법은 한 가지뿐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것 뿐입니다.
 
원수 사랑이라는 것, 김남조 선생님의 말씀처럼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을 통해서는 가능합니다.
 
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가 수련자 시절, 한 연로한 수녀를 부축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하루에도 몇번씩 데레사는 노인 수녀를 병실에서 성당으로, 식당으로 조심스럽게 모시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 수녀는 성미 고약하고 까탈스럽기로 유명했습니다.
 
데레사의 모든 것이 못마땅했던 까칠한 수녀는 틈만 나면 이렇게 외쳤습니다.
“내가 넘어지지 않도로 잘 보란 말이야! 넌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잖아, 그러니 늘 조심하라구!”
 
성심성의껏 최선을 다해도 그 마음과 노고를 몰라주는 까칠한 수녀가 밉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던 데레사는
자서전에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몹시 힘들게 하는 수녀를 위해 나는 진심을 다해 기도했다. 그녀를 위해 할 수 있는 한 잘해 주려고 했지만, 뭐라고 쏘아붙여 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때는 서둘러 밝게 웃어 보이며 화제를 돌려버렸다.”
 
데레사는 매일 매순간 데레사는 까칠한 수녀가 내뱉는 불평불만을 기꺼이 참아냈습니다.
때로 상대방을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이 들때는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나 성당으로 달려갔습니다.
한동안 말없이 십자가를 바라보곤 했습니다.
 
지속적으로 깐죽거리는 까칠한 수녀가 “날 두고 또 어딜 가는거야?”라고 따질 때, 인내의 한계에 도달할 때 마다,
데레사는 제의방에 중요한 일이 있어 간다며, 초스피드로 그 자리를 빠져나오곤 했습니다.
 
어렵고도 어려운 원수 사랑입니다. 백방으로 노력해도 불가능한 원수 사랑입니다.
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는 이상 도달 불가능해보이는 원수 사랑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서는 가능해집니다. 십자가를 뚫어지게 바라볼 때 가능해집니다.
십자가를 기쁘게 질 때 가능해집니다.
 

신고사유를 간단히 작성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