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제가 중학생 때였을 것입니다. 학교에서 적금을 들어야 한다면서 거의 반강제로 적금을 붓게 했습니다. 예금이라는 것도 잘 모르는데 매달 얼마씩 적금을 부어야 한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만기일까지 제대로 적금을 부으면 높은 이자와 함께 목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용돈도 부족할 때, 적금을 붓는다는 것은 너무 큰 어려움이었습니다. 하지만 용돈을 아끼고, 차비도 아껴서 중학교 졸업할 때 적금 만기가 되어 10만 원이 조금 넘었던 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지금이야 얼마 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당시 짜장면이 1,000원을 넘지 않았고, 버스요금이 200원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10만 원은 학생에게 정말로 큰돈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돈으로 무엇을 했을까요? 사실 오랫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끼고 아껴서 모은 것이라 차마 이 돈을 쓸 수가 없는 것입니다. 쉽게 벌었던 세뱃돈의 경우는 먹고 노는데 금세 써버렸지만, 이 경우는 달랐습니다. 먹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 등 모두 참으면서 아끼고 아껴서 부은 적금을 그냥 한순간의 만족으로 없애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본인이 힘을 쏟을수록 정성을 기울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에 대해서도 그렇지 않을까요? 만약 지금 주님 만나는 것을 소홀히 하고 있다면 그만큼 주님과의 만남에서 정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과의 만남을 가장 우선시한다면, 늘 주님께 정성을 기울이는 사람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실천하기 힘든 말씀을 전해주십니다.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은 할 수 있겠다 싶지만, 원수를 사랑한다는 것이 과연 쉬울까요? 나를 힘들게 하는 박해자를 위해 기도할 수 있을까요? 그런데 주님께서는 하늘의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우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그렇게 지키기 힘든 사랑의 계명을 철저히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주님을 첫 번째 모신다면 어떨까요? 이 말씀을 지키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완벽한 사랑을 실천하라고 하시니까요. 그러나 주님이 내게 첫 번째가 아니라면, 불가능한 말씀을 하신다면서 불평불만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질 것입니다.
주님의 계명을, 특히 사랑의 계명을 어떻게 지키고 있느냐에 따라 주님께 대한 우리의 정성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남들만큼만 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하느님의 자녀는 남들만큼 사는 삶이 아닌 그 너머에 있는 가치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처럼 완벽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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