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스스로를 높인다거나 자화자찬하지 않으셨습니다!
피정센터 내 꽤 넓은 경작지가 있는데, 올해는 이런 저런 과일 묘목을 심고 있습니다. 매화나무를 비롯해서 감나무, 자두나무, 무화과나무 등등 시험삼아 심고 있는데, 마음은 벌써 탐스러운 열매가 제 손에 쥐어져 있는 듯 합니다. 먼훗날 후배들이 봄이면 예쁜 과일나무 꽃들을 보고, 가을이면 열매도 수확하는 것을 생각하니, 제 마음이 벌써 흐뭇해집니다.
묘목 심는 것을 너무 쉽게 생각했습니다. 그냥 갖다 꽂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뿌리 깊이가 만만치 않아 땅을 파고 또 파야 했습니다. 그 다음 어린 묘목이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상토를 한 삽 뿌립니다. 그 후에 묘목을 심고 흙을 덮고, 물을 듬뿍 듬뿍 뿌려줍니다.
하루 온종일 뙤약볕 아래 일하며, 무엇이든 거저는 없다는 것을 다시 한번 실감합니다. 매일 우리들의 식탁에 오르는 탐스런 과일들이 있기까지 누군가의 노고와 헌신, 가슴졸임과 희생이 있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매 끼니 언제나 겸손한 마음, 감사의 마음으로 식탁에 앉아야겠습니다.
복음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는 예수님의 성향이 한 가지 있습니다. 지속적이고 일관된 겸손과 자기 낮춤입니다. 공생활 기간 내내 예수님께서는 단 한번도 스스로를 높인다거나 자화자찬하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의 인정이나 박수갈채를 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서 영광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너희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안다. 나는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왔다. 그런데도 너희는 나를 받아들이지 않는다.”(요한 복음 5장 41~43절)
사람들이 예수님을 왕으로 추대할 낌새가 보이자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나라는 이 세상의 나라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며, 홀연히 그 자리를 떠나 당신의 길을 걸어가십니다.
치유의 은총을 입은 백성들이 몰려와 감사와 찬양을 드릴 때도, 예수님께서는 조용히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결코 어깨나 목에 힘을 잔뜩 주지 않으시고 겸손하셨습니다. 언제나 하느님 아버지께로 공을 돌리셨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발밑을 한번 내려다봅니다. 일이 잘 풀릴 때는 절대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자기가 잘 나고 열심히 해서 그런 줄 압니다. 계속 그러다가는 조만간 큰코 다칠 것입니다.
틈만 나면 ‘라떼는 말야’라고 외치면서 끝도 없이 자신의 업적을 늘어놓습니다. 자화자찬의 대왕입니다. 세상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박수 받기를 그렇게 좋아합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순시기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뻣뻣한 우리의 목을 부드럽게 풀어주기 위해 노력해야겠습니다. 겸손하신 하느님께서는 뻣뻣한 목을 그렇게 싫어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니 참으로 목이 뻣뻣한 백성이다.”(탈출기 32장 9절)
끝끝내 회개하지 않고 잘못 하나 없다고 목에 힘주는 사람들을 향한 하느님의 말씀이 섬뜩합니다. “이제 너는 마를 말리지 마라. 그들에게 내 진노를 터뜨려 그들을 삼켜 버리게 하겠다.”(탈출기 32장 10절)
예수님처럼 늘 겸손되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해 일해야겠습니다. 예수님의 일거수일투족은 오직 하느님 아버지의 영광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뜻이 아니라면 단 한발자국도 앞으로 내딪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아버지와 하나였고, 늘 영적, 정신적으로 견고한 유대와 일치 속에 사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