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람이 신부님을 찾아왔습니다. 직장의 한 동료로 인한 정신적 스트레스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데 도저히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지요. 이런 스트레스가 벌써 1년이나 지속되었는데, 이번에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신부님을 찾아왔다고 말했습니다. 신부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1년 동안 그분과 안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군요. 그런데 참지 않고 복수해도 그 지긋지긋한 관계는 멈출 수 없을 텐데요.”
복수한다고 상대방이 무서워서 피할까요? 아마 또 다른 방향으로 복수할 것입니다. 악순환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됩니다. 따라서 이런 악순환은 누가 되든 상관없이 빨리 끊는 것이 제일 유익할 수밖에 없습니다.
속 좁은 생각은 속 좁은 반응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넓은 생각, 긍정적인 마음은 마찬가지로 넓고 긍정적인 좋은 반응을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먼저 이 악연의 고리를 끊는 것이 유익하겠습니까? ‘나는 안 해!’라고 말하지만, 내가 안 될 것은 또 무엇일까요?
주님께서 강조하신 사랑의 삶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 내게 잘해주는 사람만 사랑하는 것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뻔한 것이라고 하셨지요. 사회에서도 특별한 사람이 더 인정받습니다. 남들과 똑같이 사는 남들과 똑같은 취급을 받을 수밖에 없기에, 특별한 사람이 더 인정받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떠실 것 같습니까? 주님 역시 남들처럼 사는 삶이 아닌, 당신이 말씀하신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특별한 삶을 사는 사람을 더 좋아하시고 인정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영이 들린 사람을 만나서, “더러운 영아, 그 사람에게서 나가라.”(마르 5,8)라고 명령하십니다. 이 더러운 영은 예수님의 말씀을 어길 수가 없지요. 그래서 나가긴 하겠지만, 산 쪽에 놓아 기르는 돼지 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청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들어가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들어가자마자 돼지 떼는 호수를 향해 비탈을 내리 달려 호수에 빠져 죽고 맙니다.
한 명의 사람이 더러운 영으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른 사람들처럼 정상적으로 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은 모두 함께 기뻐할 일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을 향해 자기 고장에서 떠나 주십사고 청합니다. 그들은 속 좁은 생각에 잡혀 있습니다. 한 명의 구원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이 아닌, 자기들의 물질적인 손해를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향한 사랑이 물질적인 것에 대한 사랑보다 작아서는 안 됩니다. 이런 속 좁은 마음으로는 주님과 절대로 함께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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