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소언(스테파노, 67, 수원교구 송전본당)화백이 그 주인공. 작품 완성 1주일을 앞둔 5월 16일 서화백의 용인 처인구 이동면 묘봉리 작업장을 찾았다. 백발로 반갑게 맞는 원로 화백. 평생 세속의 재물과 명예만 쫓다가 빚보증이 잘못돼 전 재산을 잃은 것이 10년 전이다. 신앙을 회복한 것은 불과 3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런 그가 요즘 뒤늦게 신앙 그리기에 푹 빠져 있다.
“평생 동안 생명 없는 그림만 그려 왔습니다. 그림으로 돈과 명예만 쫓았습니다. 신앙인이 신앙을 그리지 않는 것은 일종의 외도입니다. 신앙을 그리지 않는 화가는 신앙에 푹 빠져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3월부터 그리기 시작해 완성 단계에 접어든 그림을 미리 살짝 보여준다. 추상화도 아니고 사실화도 아니다. 추상화가 아닌 것은 비둘기와 양, 나비를 사실적으로 그렸기 때문이고, 사실화가 아닌 것은 비둘기와 양, 나비가 비둘기와 양, 나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흰색 비둘기 7마리는 7성사를, 흰 양 12마리는 12사도를 의미한다. 온통 흰색이다. 작가의 머리 색깔을 닮았다. 자신의 머리색깔처럼 평생동안 흰색의 양을 그려온 양 화가다.
“1960년대 국전에 특선으로 당선될 때 작품 소재가 양이었습니다. 당시 신앙인도 아니었는데 양을 왜 그렸는지 저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동안 수없이 양을 그렸기 때문에 이제 양은 눈을 감고도 그립니다. 하느님이 지금의 저를 40년 전부터 준비해 주신 듯합니다.”
2006년 인사동 마노갤러리에서 ‘12사도’를 주제로 전시회를 열면서 본격적으로 믿음을 그리는 화가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2월 13~19일 서울 명동 평화화랑과 20~28일 수원 북수동 수원성지에서 각각 두 번째, 세 번째 전시회를 가졌다. 반응은 뜨거웠다. 교회 내 화단은 모처럼 ‘신앙을 그리는 원로 화가를 만났다’고 찬사를 보냈다.
“보이지 않는 신앙을 보이는 그림으로 표현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다가간다면 절대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일이 쌓여있다. 서화백의 그림에 반한 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들이 여기저기서 “신앙을 그려 달라”며 찾아온다. 그때 마다 서화백은 “예”라고 말한다. 늦게 시작한 신앙 그리기인 만큼, 그 열정 또한 크기 때문이다.
서화백은 요즘 새로운 신앙 인생에 걸맞는 새로운 꿈에 부풀어 있다. 아름다운 상상 대표 김보겸(베드로)와 함께 현 작업실 옆에 갤러리를 개장할 계획이다. 더 큰 꿈이 있느냐고 물었다.
“요즘 빛의 신비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그 빛을 그리고 싶습니다.”
우광호 기자 woo@catholictimes.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