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마태 3,1-12: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다가왔다!”
1. 회개의 복음: ‘하늘나라의 도래’와 인간의 응답
오늘 복음은 요한 세례자의 첫 외침으로 시작된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2절) 요한의 외침은 단순히 윤리적 개선의 촉구가 아니라, 하느님의 결정적 개입 앞에서 인간이 새로운 존재로 전환되어야 함을 요구하는 구원사의 요청이다. 즉, 회개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다. 교리서는 이 복음의 핵심을 이렇게 요약한다. “회개는 인간이 자신의 죄를 인식하고, 하느님께로 마음을 돌리며,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근본적 내적 변화이다.”(1427항) “이 회개는 단 한 번의 행위가 아니라, 인간의 삶 전체를 통해 지속적으로 일어나는 영적 여정이다.”(1430항) 따라서 대림 시기에 교회가 반복해서 “회개”를 선포하는 것은, 단순히 ‘죄의 고백’을 촉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심에 합당한 존재로 변화하라는 초대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은 먼 길이 아니다. 단지 마음을 돌리면 된다. 하느님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네 마음 속에서 기다리신다.”(Enarrationes in Psalmos 85,8)
2. 이사야의 메시아 예언: 정의와 평화의 회복
제1독서의 이사야 예언(이사 11,1-10)은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한 싹이 돋아나고,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나리라.”(1절) 말한다. 이는 메시아의 정의로운 통치와 평화의 도래를 상징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싹”을 “그리스도 자신”으로 해석하며, 그분 안에서 정의와 평화가 온전히 화해된다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정의의 태양이며, 그분 안에서 모든 불의가 녹아 사라진다.”(Sermo 293,3) 이사야의 예언은 하느님께서 세상의 악을 멸하고, 새로운 창조를 시작하신다는 종말론적 약속이자, 인간의 내적 쇄신을 요구하는 윤리적 요청이기도 하다. 이 점에서 요한 세례자의 “회개하라”는 외침은 이사야 예언의 직접적인 성취이다. 그의 음성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이사 40,3)로서 하느님이 새로운 출애굽을 이루실 것을 선포한다.
3. 요한 세례자의 소명과 예언자적 권위
요한 세례자는 구약과 신약을 잇는 마지막 예언자이자, ‘하느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람’이다. 그의 존재는 엘리야의 예언적 전통 안에서 이해된다(말라 3,23 참조). 그의 옷차림(털옷, 가죽띠)은 엘리야를 상징하며, 그의 장소(광야)는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구원사의 공간을 드러낸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요한의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요한은 세상의 모든 소란을 떠나 광야로 갔다. 그는 하느님 말씀만이 자신의 재산이며, 회개의 외침만이 자신의 음식이었다.”(Homilia in Matthaeum 10,1) 요한의 존재는 단순한 도덕적 개혁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길을 여는 신비적 예언자이다. 그는 “자신보다 더 큰 분”을 증언하며, 그분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춘다.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11절) 이 겸손은 곧 참된 그리스도인 영성의 원형이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말한다. “요한은 자신을 낮추어 주님께 길을 열었다. 교만은 길을 막지만, 겸손은 주님을 맞이한다.”(In Ioannem Tractatus 4,5)
4. 회개의 의미: 외적 행위에서 내적 변화로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8절)라고 촉구한다. 이 말씀은 단순한 윤리적 행위의 권고가 아니라, 내면의 전환을 뜻한다. 오리게네스는 “회개”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회개는 단지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인간이 자신의 중심을 하느님께로 돌리는 것, 그것이 회개의 본질이다.”(Homiliae in Lucam 24,2) 교리서도 이를 뒷받침한다. “회개는 인간의 내적 변화를 의미한다. 마음의 근본 방향을 바꾸어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다.”(1431항) 이렇게 볼 때, 요한의 외침은 단지 ‘심판의 경고’가 아니라, ‘새 창조의 부름’이다. 도끼와 불의 이미지는 파괴가 아니라, 정화의 상징이다. 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마태 3,11) 말씀은 심판의 불이 아니라, 성령의 불, 곧 사랑의 정화를 가리킨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렇게 주석한다. “그 불은 죄인을 멸하는 불이 아니라, 마음의 불순물을 태워 거룩하게 하는 불이다.”(Homilia in Matthaeum 11,3)
5. 세례의 신비와 성령의 불
요한의 세례는 물로 죄를 씻는 ‘징표적 회개’였지만, 그리스도의 세례는 성령 안에서 새로 태어남이다(요한 3,5). 요한은 “나는 물로 세례를 주지만, 그분은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11절) 말한다. 이 차이는 단순히 세례의 형식이 아니라, 은총의 본질적 차이를 드러낸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구분한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상징이었고, 그리스도의 세례는 재창조의 은총이다.”(In Ioannem Tractatus 5,9) 교리서는 이를 설명한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의 예비였고, 예수의 세례는 성령 안에서의 새로운 삶을 주는 것이다.”(720항) 따라서 회개는 단지 죄의 유감이 아니라, 세례적 삶으로 돌아가는 지속적 운동이다. 그리스도인은 세례를 통해 이미 회개의 여정을 시작했으며, 대림은 이를 다시 새롭게 하는 시기이다.
6. 결론: 회개는 새로운 시작의 은총
요한의 외침은 단순한 경고가 아니라, 희망의 복음이다.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는 것은 심판의 위협이 아니라, 새로운 생명의 가능성을 뜻한다. 하느님은 우리 안에 낡은 뿌리를 잘라내고, 성령의 새싹을 돋게 하신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회개는 우리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그리스도를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그대는 이미 새로운 창조 안으로 들어선 것이다.”(Sermo 19,2) 제2차 바티칸 공의회도 이렇게 가르친다. “교회의 본질은 거룩함에 있다. 그러나 그 거룩함은 완성된 것이 아니라, 회개와 쇄신 속에서 성장해 간다.”(교회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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