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리사이와 세리의 기도
오늘 예수님은 “스스로 의롭다 자신하며 다른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자들”을 대상으로 하나의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 한 사람은 바리사이였고 다른 하나는 세리였다.”
‘분리된 자’를 의미하는 바리사이파는 사두가이파와 에쎄네파와 함께 당시 유다교의 영향력 있던 종교조직으로서, 예수님 시대에 약 6,000여 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율법 제일주의자로서 철저한 율법 준수를 통해서만이 하느님의 의로움, 곧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율법 준수에 성실하지 못한 자들, 예를 들어 세리들과 죄인들을 ‘무법자’로 여겨 업신여기거나 상종을 일체 거부했으며, 나아가 의로움, 곧 구원 영역에서 하느님께 자기 권리를 내세울 수 있다고 확신하던 사람들입니다.
한편, 세리들은 하나의 세무직에 종사하던 사람들로서, 복음에서는 늘 죄인들과 함께 언급됩니다. 하나의 직업으로서 그 직무에 충실하기만 하면 되었겠지만, 로마제국의 치하라는 정치적 상황에서, 모든 세금이 로마제국으로 흘러 들어갔기에, 세리라는 직업 자체가 유다인들의 눈에 좋게 보일 리 없었을 뿐만 아니라, 착복이나 횡령 등으로 어느 직업보다도 비리의 위험이 컸기 때문입니다.
이 두 사람이 같은 목적으로 성전에 올라갑니다. 우리는 ‘의롭다고 자처하던 사람’의 기도와 ‘가슴을 치며 자비를 청하는 사람’, 이 두 사람의 기도 내용과 모습 속에서 그들의 속마음과 신앙 현실을 그대로 직시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바리사이의 기도 안에는 하느님이 자리하실 공간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부재’가 목격됩니다. 기도는 부족한 인간이 전지전능하신 하느님께 올리는 행위, 따라서 하느님 중심이어야 하는데, 모든 것이 자기중심적입니다. 사실 종교적인 잣대로 본다면, 이 사람은 놀라울 정도로 율법을 완벽하게 준수한 인물로 평가되나, 하느님의 존재에 대한 필요성이 결핍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물론, 바리사이의 기도 속에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하는 표현이 담겨 있기는 하나, 이 역시 하느님 없이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능력을 지녔다고 확신하는 신념의 또 다른 표현일 뿐입니다.
이와는 달리, 세리의 기도는 오로지 하느님 중심적입니다.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 엄두도 내지 못하고”, 다시 말해서 잘못을 일일이 열거하여 용서를 청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그저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간청할 뿐입니다. 하느님의 자비 없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 위대한 신앙인의 고백이며, 늘 가슴에 담고 살아가야 할 고백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 바리사이가 아니라 이 세리가 의롭게 되어 집으로 돌아갔다.” 너무나 당연한 결과입니다. 바리사이는 하느님께 의로움을 청한 적이 없었던 반면, 세리는 그것이 기도의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하루, 신앙인으로 열심히 살고 있다면 이조차 전적으로 하느님의 도우심 덕분임을 온 마음으로 감사드리고, 아직 부족함이 태산이라면 자비하신 하느님께 자비와 도움을 청하며, 은총의 이 사순시기를 더욱 힘내 달려가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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