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배우는 것이 전혀 배우지 않는 것보다 낫다.’라는 고대 로마 작가인 푸블릴리우스 시루스의 말에 크게 공감하게 됩니다. 이제 나이 50을 훨씬 넘어서다 보니, 이 말이 분명한 진실임을 삶 안에서 깨닫게 됩니다. 모두가 늦었다고 하는 서른 살의 나이에 대학에 들어가 지금 의사로 잘 사는 친구도 있고, 은퇴 후에 그림을 그리며 제2의 인생을 사는 지인도 있습니다. 그들을 보면서 ‘늦은 때’란 없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인가?’라는 생각은 스스로 한계를 만듭니다. 대신 늦게라도 시작하는 것이 현명합니다.
이렇게 포기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와 비슷하게 미루는 것도 큰 문제입니다. 특히 신앙이 그러한 것 같습니다. 지금 할 일이 많아서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열심히 하겠다고 다짐하십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지 않은 사람이 은퇴 후 곧바로 열심한 신앙인이 될 수 있을까요? 그럴 일이 없습니다. 이제 늦었다면서 후회만 남길 것입니다.
배움이 지금 당장 해야 지혜로운 것처럼, 신앙생활도 지금 당장 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해도 부족함을 느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은퇴 후 잠깐 신앙생활 하는 것으로 충분할 수 있을까요? 신앙에 대해 특별히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배필이신 성 요셉을 통해 깊은 묵상을 하게 됩니다.
먼저 성인은 복음 안에 중요한 인물이지만, 단 한 마디의 대사도 없습니다. 무능하다는 표시일까요? 그보다 어쩌면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침묵하셨던 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말보다 행동으로 자기 믿음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천사가 했던 말에 어떤 말도 하지 않습니다. 그저 명령한 대로 행동할 뿐이었습니다.
복음에서는 요셉 성인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묘사합니다. 철저한 원칙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의로움은 누군가를 정죄하고 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살리고 품어주는 의로움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성모님의 임신에 배신감과 혼란을 느낄 수 있었지만, 남모르게 파혼할 작정을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성인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를 봐야 합니다. 우선 결혼을 결심한 사람의 꿈은 무엇일까요? 대부분 평범하고 단란한 행복한 가정일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 성인은 하느님께서 원하신 길을 걷습니다. 자기의 꿈보다 하느님의 계획이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요셉 성인을 바라보면서 우리의 신앙을 반성합니다. 침묵 속에서 주님의 명령을 따르는 데 집중하고 있었을까요? 또 살리고 품어주는 의로움을 갖추고 있나요? 하느님의 계획을 제일 첫 번째 자리에 두는 삶을 살고 있나요? 이제 더는 미루는 신앙생활, 후회만 남기는 신앙생활은 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오늘의 명언: 올바른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이 목표 달성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다. 그러나 잘못된 마음가짐을 가진 사람을 도와줄 수 있는 것도 없다(토머스 재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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