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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3월 20일 _ 조명연 마태오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3-20 조회수 : 65

사순 제4주간 금요일

 

 

걱정 많은 것이 좋을까요? 아니면 걱정 없는 것이 좋을까요? 당연히 걱정 없는 것이 좋은 삶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가톨릭대학교 후리 시리크 교수의 연구를 통해 걱정에 관해 새로운 앎을 얻게 됩니다.

 

그는 로스쿨에 다니는 대학생을 대상으로 스스로 걱정 많은 사람인지를 먼저 평가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최종 시험의 연관성을 조사했습니다. 즉, 걱정 많은 사람과 걱정 없는 사람의 성적 비교입니다. 누가 더 좋았을까요? 걱정 없는 사람이 더 좋은 성적을 맞았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실제 성적은 걱정 많은 사람이 더 높았습니다.

 

걱정 많은 사람이 훨씬 우수했습니다. 걱정이 많은 사람일수록 미래를 불안하게 느끼고 그 불안을 피하려고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걱정 많다는 것이 그리 나쁜 성격은 아니었습니다. 미래를 불안하게 느끼고 그 불안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으로 준비하는 유형일 뿐이었습니다.

 

우리는 걱정 많은 사람을 나쁜 성격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모든 분야에서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우리의 커다란 한계를 드러냅니다. 걱정 많은 사람도 우수함이 많았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예루살렘 주민들도 예수님에 대해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메시아께서 오실 때에는 그분이 어디에서 오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할 터인데, 우리는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지 않습니까?”(요한 7,27)

 

당시에 메시아는 어디서 오는지 모르게 갑자기 등장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나자렛 출신인지를 알고 있다면서 믿음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표면적 지식이 영적인 눈을 멀게 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알고 또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나 스스로 온 것이 아니다.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신데 너희는 그분을 알지 못한다.”(요한 7,28)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오신 것이 아니라, 참 하느님의 뜻에 의해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참되신 하느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그들의 무지를 꾸짖으십니다.

 

성경을 많이 읽고, 또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이 과연 하느님에 대해 다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아무리 알려고 해도 전부를 알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계속해서 알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참되신 분을 조금씩 알아가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당신이 태어났을 때, 당신은 울었고 다른 모든 사람들을 행복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은 이것이다. ‘당신이 죽을 때 다른 사람들이 모두 울고 있을 그 순간에, 당신은 행복할 것인가?’(토니 캠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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