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수난 성지 주일]
복음: 마태 26,14-27,66: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자유와 사랑”
1. 자유로이 선택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앞두고 “아버지,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26,39)라고 기도하신다. 이는 강요된 체념이 아니라, 아버지 뜻에 대한 자유로운 사랑의 응답이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순종으로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다. 그분의 의지가 아니었다면, 죽음은 그분을 굴복시킬 수 없었다.”(In Ioannis Evangelium Tractatus 26,4)
바오로 사도의 말씀처럼, “죽기까지,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다.”(필리 2,6-8) 예수님의 자유와 순명은 인류 구원의 길을 열었다. 신앙인도 마찬가지로, 하느님 뜻 안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때 참된 생명과 영광에 들어간다.
2. 무죄하심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죄
마태오 복음은 예수님의 무죄를 분명히 드러낸다. 빌라도의 아내는 “당신은 그 의인의 일에 관여하지 마세요.”(27,19)라고 하고, 백인대장은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27,54)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유다는 탐욕으로, 베드로는 두려움으로, 제자들은 안일함으로 스승을 떠난다.(26,14-26,56)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제자들의 배반을 두고 이렇게 주석한다. “주님은 제자들이 떠날 것을 아시면서도 그들을 택하셨다. 이는 인간의 나약함 속에서도 당신의 은총이 더 크게 드러나게 하시려는 뜻이었다.”(Homiliae in Ioannem 82) 즉, 인간의 죄와 배신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흔들리지 않는다. 우리 안의 연약함조차도 은총을 드러내는 자리가 될 수 있다.
3. 수난 이야기의 교훈
성 아우구스티노는 십자가를 가리켜 말한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심판대이자, 동시에 그분의 학교이다. 우리는 거기서 무엇이 사랑인지를 배운다.”(Sermo 218,3) 예수님은 자유롭게 십자가를 택하셨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사랑이 드러났다. 따라서 수난 복음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에 따르는 자유와 사랑을 선택하도록 초대한다.
4. 성주간과 부활을 향한 삶
성주간은 우리를 다음과 같이 초대한다. 즉, 자유로운 의지로 매일 하느님을 선택하며, 제자들의 나약함을 거울삼아 내 삶을 성찰하고, 주님의 고통과 승리를 묵상하며, 부활의 기쁨을 세상과 나누는 것이다.
성 암브로시오는 성주간의 의미를 요약하며 이렇게 권고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으니, 우리도 그분과 함께 고난을 나누어야 한다. 그분의 죽음에 참여하지 않고는, 그분의 생명에 참여할 수 없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10,112)
5. 맺음말
성지주일은 단순히 예수님의 과거 수난을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오늘, 우리 각자가 하느님의 뜻 안에서 자유롭게 순명하며,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는 날이다. 그 길에서 우리는 참된 해방과 부활의 생명을 준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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