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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묵상

4월 20일 _ 전삼용 요셉 신부

작성자 : 홍보국 작성일 : 2026-04-20 조회수 : 131

[부활 제3주간 월요일] 
 
요한 6,22-29 
 
허기의 번역 오류로 깨달을 수 있는 영혼의 존재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빵을 배불리 먹었기 때문이다.
썩어 없어질 양식을 얻으려고 힘쓰지 말고,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양식을 얻으려고 힘써라." (요한 6,26-27) 
 
찬미 예수님!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참으로 기묘한 장면을 목격합니다.
전날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배불리 먹었던 군중이, 다음 날 눈을 뜨자마자 다시 예수님을 찾아 배를 타고 호수를 건너옵니다.
겉으로 보면 대단한 열성을 가진 신자들 같지만, 예수님은 그들의 속내를 가차 없이 발가벗기십니다.
"너희는 지금 표징(Sign)을 본 게 아니라, 그냥 공짜 빵을 먹어서 배가 부르니까 나를 찾아온 거다." 
 
이것은 2천 년 전 유다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이 세상의 빵을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동하지만, 왜 그 영혼은 갈수록 메말라갈까요? 왜 인간은 육체가 배부른데도
정서적으로는 '아사 상태'에 놓여 있는 것일까요? 영혼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혼의 존재를 깨달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영혼의 배고픔도 있음을 느끼면 됩니다.
우리가 만져보고 해부해 보아서 육체에 위장이 있고 근육이 있는 것을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밥을 안 먹으면 배가 고파서 육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존재건 유지되려면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영혼도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면 될 것입니다.  
 
세계 최고의 부자였던 그리스 선박왕 오나시스의 딸, 크리스티나 오나시스(Christina Onassis)는
모든 것을 가졌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외로운 여인'이라 불렸습니다.
그녀는 평생 지독한 영적 허무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그 허무를 채우기 위해 선택한 것은 '음식'이었습니다. 
 
그녀는 하루에 다이어트 콜라를 수십 병씩 마셨고, 기분이 조금만 우울해지면 초콜릿과 케이크를 폭식했습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살 수 있지만, 내 마음의 구멍을 메울 방법은 오직 먹는 것뿐이야."
그녀는 육체의 배를 찢어질 듯 채웠지만, 더 허기를 느꼈습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정서적 폭식'이라 부릅니다. 영혼의 굶주림을 육체의 허기로 잘못 번역한 결과입니다.
크리스티나는 빵을 먹은 게 아니라, 빵이라는 마취제를 통해 하느님을 향한 영혼의 부르짖음을
잠재우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마취제가 깨면 통증은 더 심해집니다.
결국 그녀는 37세의 나이에 영혼의 허기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심장마비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출처: 니겔 뎀스터, 『크리스티나 오나시스』) 
 
오나시스는 왜 배고픈 존재가 육체만이 아님을 깨닫지 못했을까요?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리 채워도 허기가 진다면 그 허기진 무엇이 먹어야 하는 음식이 따로 있습니다.
음식이 필요하다면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기 위해서 그것을 채워보는 것입니다. 영혼은 어떤 음식이 필요할까요?
전쟁이나 사고로 다리를 잃은 환자들 중 상당수는 존재하지도 않는 '유령 다리'에서 극심한 통증을 느낍니다.
발가락이 꼬이는 것 같고, 발바닥이 타들어 가는 것 같다고 호소합니다.
환자들은 고통을 멈추기 위해 비어있는 허공(다리가 있던 자리)을 주무르거나, 진통제를 쏟아붓습니다.
하지만 다리가 없는데 그곳에 아무리 약을 바르고 마사지를 한들 고통이 사라지겠습니까?
환자들은 절망합니다.
"다리가 없는데 왜 다리가 아픈가?" 
 
이 지독한 절망의 끝에서 의학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고통의 실체는 '다리'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지배하던 '뇌'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뇌가 여전히 다리의 존재를 기억하고 신호를 보내고 있기에, 하위 기관인 다리가 사라졌음에도
상위 기관인 뇌는 고통을 생성해냅니다. 
 
이때 사용하는 치료법이 바로 '거울 치료(Mirror Box Therapy)'입니다.
거울을 이용해 남아있는 반대쪽 다리를 비추어 뇌를 속이는 것이지요.
뇌가 "아, 다리가 저기 있구나"라고 안심하는 순간, 마법처럼 고통은 사라집니다.
뇌라는 것은 ‘믿음’에 의해 움직이고, 이 믿음이 육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증거입니다.(출처: V.S. 라마찬드란, 『두뇌 실험실』) 
 
믿음에 의해 채워지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과학은 이를 뇌라고 하지만, 뇌도 물질이기 때문에 땅에서 나는 밥에 의해 에너지를 공급받습니다.
믿음은 밥에 의해 공급받는 게 아닙니다.
육체는 죽으면 땅으로 돌아가지만, 영혼은 어디서 왔는지 모릅니다.
그 온 곳의 양식을 먹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군중이 묻습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려면 저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요한 6,28).
사람들은 자꾸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쌓고, 심지어 더 많이 봉사해야 영혼이 채워질 줄 압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답은 우리의 뒤통수를 탁 칩니다.
"하느님의 일은 그분께서 보내신 이를 너희가 믿는 것이다." (요한 6,29). 
 
베트남의 구엔 반 투안 추기경님은 공산 정권 아래서 13년간 감옥 생활을 했습니다.
굶주림과 고문, 어둠이 지배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하느님께 따졌습니다.
"주님, 제가 사목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왜 이런 썩은 빵을 먹으며 여기 갇혀 있어야 합니까?" 
 
그때 주님은 그에게 음성을 들려주셨습니다.
"반 투안, 너는 '하느님의 일'을 사랑하느냐, 아니면 '하느님 자신'을 사랑하느냐?"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그동안 '하느님의 일'이라는 빵에 집착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즉시 방향을 틀었습니다.
감옥에서 하느님 한 분만을 희망하기로 결단했습니다.
하늘에서 오는 양식으로 영혼을 채워보기로 한 것입니다.  
 
그는 몰래 전달된 포도주 몇 방울과 빵 부스러기로 매일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손바닥 위에 올려진 그 작은 성체 안에서 그는 부활하신 주님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영혼이 하느님으로 가득 차니, 수용소의 죽은 빵은 더 이상 나를 굶기지 못했습니다.
나는 감옥에서 생전 느껴보지 못한 가장 큰 풍요를 누렸습니다."
(출처: 구엔 반 투안, 『희망의 증거』) 
 
이렇게 배고픈 존재를 인식하고 그것의 배를 불려 보면 그것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게 됩니다.
저도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체조배를 하면서 매번 하늘의 빵으로 배가 채워짐이 느낍니다.
그러면 의심할 수 없어집니다.
이것이 영혼의 존재를 인식하고 하늘의 빵을 찾는
가장 완전한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우리는 스테파노 성인을 봅니다. 그는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은 그를 죽이려 달려들었지만, 성경은 그의 얼굴이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 (사도 6,15)고 증언합니다. 
 
왜 스테파노는 죽음 앞에서도 천사의 얼굴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주는 양식'으로 배가 불렀기 때문입니다.
돌이 날아오고 세상의 생명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그는 하느님이 보증하신(Seal) 하늘의 빵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는 육체의 배고픔과 죽음의 공포를 하느님에 대한 신뢰라는 믿음으로 완전히 덮어버린 사람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젊은 시절 세상의 쾌락, 명예, 지식이라는 온갖 빵을 먹어보았습니다.
그는 당시 지성계의 슈퍼스타였고 모든 욕망을 충족시킨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끝은 늘 구토와 허무였습니다.
그가 마침내 하느님 품으로 돌아와
『고백록』의 첫머리에 남긴 문장은 오늘 우리 묵상의 마침표입니다.  
 
"주님, 당신은 당신을 향하도록 저희를 만드셨기에, 저희 마음은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결코 평안하지 않나이다." (St. Augustine, 『Confessiones』, 1,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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