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 제3주간 월요일]
복음: 요한 6,22-29
소수자에 대한 배려, 그것은 품격있는 사회가 갖춰야 할 가장 기본적인 문화!
오래전 먼발치에서 송명희 시인을 뵌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과 목청 터지도록 부르던 복음 성가의 작사자를 뵈니 정말이지 큰 감동이 밀려왔습니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으로서 송명희 시인께서 감당해야 할 고통을 참으로 커 보였습니다.
“이렇게 좋은 축복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짧은 말 한마디를 하시는데,
온 몸을 동원해야만 했습니다.
그런 그분의 마음에서 흘러나온 시구들은 비장애인인 우리들의 가슴을 세게 후려치고 있습니다.
“나 가진 재물 없으나 / 나 남이 가진 지식 없으나. 나 남에게 있는 건강 있지 않으나 / 나 남이 갖고 있지 않은 것 있으니...”
“예수 그 이름 / 나는 말할 수 없네 / 그 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 그 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송명희 시인께서 항상 입에 달고 다니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감사입니다.
“산소 호흡기를 달지 않고도 숨을 쉬고 살아 있음에 감사합니다.”
17살 꽃다운 소녀 시절 송명희 시인은 극심한 고통과 좌절 속에서 아스라이 들려오는 한 음성을 들었답니다.
“명희야! 네 몸이 온전했더라면 네가 나를 알았겠느냐?
두려워 말아라.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다. 놀라지 말아라.
나는 네 하느님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그 따뜻한 주님 위로의 말씀에 힘을 얻은 그녀는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온몸과 마음, 혼신의 힘을 다해 쓴 그녀의 시는 세상 많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치유하고 있습니다.
오늘 장애인의 날입니다.
장애인들을 극진히 사랑하시는 하느님께서 오늘 세상의 모든 장애인들을 축복하시고,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시며, 송명희 시인에게 그러하셨듯이 큰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시기를 간청합니다.
오늘 같은 날 우리 모두 꼭 한 가지 불변의 진리를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떵떵거리며 두발로 서있지만 사실 우리 모두 예비 장애인들입니다.
언제 어떤 모습으로 우리 모두 장애를 안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 우리의 손자손녀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언제 순식간에 장애를 지니게 될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늙고, 길바닥으로 내몰릴 수 있다.
우리의 가족도 언젠가는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기에, 우리 모두는 잠재적 장애인이다.
선천적인 장애인보다 사고나 질병으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의 수가 더 많다.
이 사실은 우리 모두가 언제라도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소수자에 대한 배려, 그것은 세련된 사회가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요소이자 가장 고결한 문화이다.
그것은 돈이나 국가를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소수자에 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심 어린 이해와 태도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박종호, ‘예술은 언제 슬퍼하는가’, 민음사)
과거와 달리 장애에 대한 시선이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부족함이 많습니다.
세상의 많은 장애인들이 차별 대우받거나 고립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되도록 우리 교회는 더욱 발 벗고 나서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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