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감탄
복음을 읽으면서 우리는 일반적으로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 또는 몸짓에 대하여 많은 관심을 쏟으나, 그분의 감성이나 감정, 곧 그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움직이는 모든 것에 대해서는 언급이 그리 많지 않아 지나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아마도 복음 저자들이 이 부분을 기록으로 남기는 데는 신중함을 기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은 우리에게 “예수님께서 감탄하셨다.” 하는 문구를 분명히 건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마음이 진하게 움직이신 것입니다.
예수님께 일어난 이 감탄이라는 감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요? 먼저, 백인대장이 표현한, 심오하고 온전한 신앙고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백인대장은 자기 자신이나 가족이 아니라, 흔히 사람 취급도 안 했던 ‘종’의 치유를 위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다가와 청합니다: “주님, 제 종이 중풍으로 집에 드러누워 있는데 몹시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신구약성경의 치유 이야기를 통틀어 예외적인 경우에 해당합니다. 백인대장의 인간성, 고통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의 신분을 고려하지 않고 돕고자 하는 인간다운 마음이 읽히는 대목입니다. 이 인간성을 읽으시고 예수님이 “내가 가서 그를 고쳐주마.” 하고 응답하셨을 때, 우리는 이 인간적 인대장이 참 신앙인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음을 확인합니다: “(주님, 저는 주님을 제 지붕 아래로 모실 자격이 없습니다. 그저) 한 말씀만 해 주십시오. 그러면 제 종이 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감탄으로 이끈 결정적 요인은 이 백인대장이 ‘이방인’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는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 이 사람은 이스라엘의 신앙에 따른 교리교육 과정을 거친 적도 없고, 성경은 물론 참 하느님이신 ‘야훼 하느님’의 존재를 알지도 못했던 사람입니다. 동족 로마인이 아니라 유다인이었던 예수님 안에서 인격적인 구원자의 모습을 발견하고 즉각 믿어 고백함으로써 종의 치유를 선사 받기에 이른 사람입니다: “가거라, 네가 믿은 대로 될 것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상속자”로 자처하던 사람들이 아니라, “동쪽과 서쪽에서 모여 온 많은 사람”이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칫상에 자리 잡을 것”임을 선포하십니다.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르고 나아가 종교가 다르더라도, 백인대장처럼 참된 인간성을 바탕으로 한 참된 믿음만 있으며 구원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복음을 선포하십니다. 한편, 오늘 예수님 곁에서 그분의 말씀을 두 귀로 직접 듣고, 그분의 행적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뒤를 이어 이 복음을 “동쪽과 서쪽”으로 전파해, “많은 사람”이 (성체를 모시기에 앞서) “주님, 제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하고 외치며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주어진 사명을 성실히 수행해 나갈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이방인 백인대장의 청원과 신앙고백을 접하시고는 감탄의 마음을 보여주십니다. 아름답고 선한, 인간적인 모든 것 앞에서 감탄이라는 감정을 숨기지 않으십니다. 더욱이 “이스라엘의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으셨으니” 당연한 감정일 것입니다.
이미 세례를 통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는, 자녀다운 삶을 통하여 언제 어디서든 하느님 아버지를 감탄하게 해드려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말과 행동, 나아가 우리의 삶이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감탄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힘쓰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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